한명숙 전 총리도 결국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모두가 추풍낙엽이다. 선거에 나가기 위해 국회의원을 사임하고 서울로 주소지까지 옮긴 인물은 실로 딱하게도 지금껏 말이 없고 '나요,나요'를 부르짖던 한나라당 필승의 인물들도 꿀먹은 벙어리다. 이른바 안철수 후폭풍의 결과다. 내년 총선과 대선도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 같다.

좋게 말해 국민들 사이에 낡은 정치와 비생산적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정치 신인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큰지가 드러났다. 그러나 정치의 연예 산업화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좋은 정치라기보다는 화끈하고 새로운 정치 드라마를 청중들이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소위 정치기획가 그룹도 당연히 필요하다. 이들은 사회적 평판이 그럴 듯한 인사들 중에서 통할 만한 인물을 골라 잘 짜여진 준비작업을 거쳐 신인으로 등장시킨다. 무명신인을 발굴해 스타로 키워내는 연예기획사 방식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안철수 신드롬 뒤에는 5공과 6공을 거쳐 온 Y씨 K씨 같은 전직 장관이나 노회한 책략가들이 포진해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공을 들여 안씨를 국회의원으로 만든 다음 대권에 도전하게 키워왔다는 풍문이다. 새로운 정당의 창당까지 염두에 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치를 기획상품으로 만들면 건전한 시민사회까지 정치라는 중병에 전염시킬 수도 있고 정치 자체를 한 편의 코미디로 만들어 버릴 가능성도 크다. 안철수 씨 역시 이번에 국보급 IT보안 전문가에서 화려한 정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이런 방식은 이미 기성 정치권에서 선거철만 되면 시도해왔던 낡은 기획의 변신이다. 단일화 들러리 세우기 같은 쇼들이 이제 장외로 옮겨간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념도 철학도 없이 오로지 쇼비즈니스 식의 인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새로운 스타일의 정치다. 정강이나 정치적 입장 같은 것도 있을 수 없다. 안철수 신드롬이라고 하지만 그의 정치 철학이나 이념 비슷한 것에 대해서라도 당최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정치기획은 대성공이었지만 우리는 IT 전문가 한 사람을 잃고 말았다. 정치의 연예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