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55 · 사진)는 직함이 여러가지다. 검사 · 변호사를 거친 후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자선사업가,저술가,강연자,교수,사외이사,사회적 기업가 등 직함도 갖고 있다.

박 변호사는 1995년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결성했다. 2002년엔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세웠다. 2006년부터는 정치 · 사회 분야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설립해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부르며 진보적 아이디어를 통한 사회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사법시험에 합격,검사가 된 후 1년 만에 사표를 내고 인권변호사로 방향을 틀었다. 사람을 잡아넣는 데 열정을 바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이른바 '긴급조치 9호세대'로 1975년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 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김상진씨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제적된 뒤 단국대 사학과로 적을 옮겼다.

박 변호사는 지난 1월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회색 지대에 살고 있다"고 했다. 경기고 출신으로 법조인의 길을 걸은 엘리트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본가와 대립하는 노동자,권력의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삶을 살면서 '소통'과 '통합'을 주요 가치로 삼았다. 특정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모두의 이익을 꾀하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는 평가다. 그는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활동을 통해 소수자의 편에 서기도 했다. 권인숙 성고문사건,미국 문화원 사건,한국민중사 사건,말지(誌)보도지침 사건,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반면 포스코 · 풀무원 등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6일 후보단일화 기자회견에서 "안 원장과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며 "잠깐의 대화로도 서로의 진심이 통했다. 앞으로 이 아름다운 관계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