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 유통업체들이 입점 중소기업의 판매수수료율을 내달부터 3~7%포인트 내리기로 합의했다고 어제 발표했다. 김동수 공정위원장이 유통업체 CEO들에게 동반성장을 위해 통큰 양보를 요구한 결과라고 한다. 억지춘향식으로 회의장에 끌려나온 백화점 CEO들은 공정위의 시퍼런 서슬에 제대로 말도 못했다. 형식은 합의지만 내용은 '공생' 완장을 찬 당국이 업자를 굴복시킨 것이다.

판매수수료 인하는 연초 기름값 100원 인하에 이어 정부가 가격에 직접 개입한 또 하나의 사례다. 정부가 시장 가격에 손대 결과가 좋았던 적이 없듯이,이번에도 부작용은 불보듯 뻔하다. 공정위는 신규 납품업체의 입점 기회를 확대하면서,계약기간도 현재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도록 했다. 이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백화점 매장공간은 한정돼 있는데 기존 업체를 빼지 않고 어떻게 신규 업체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신규 업체는 아예 백화점 문턱에 얼씬 말라는 것인지.

백화점의 판매수수료는 매장의 매출에 비례해 내는 일종의 특수 임대료다. 기본 임대료에다 입지 선정,집객 효과,고급 이미지 등 백화점이 만들어내는 유 · 무형의 부가가치가 더해져 결정되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가두점을 낼 경우 판매관리비가 백화점 입점보다 통상 10%나 더 든다고 한다. 높은 수수료가 불만이고 매장배치,판촉비 등에서 마찰이 있어도 입점에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판매수수료를 내리도록 압박하는 것은 골목길 장사나 그 어떤 사업의 원리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하다는 사실에 다름 아니다.

공정위는 수수료 인하로 유통업체의 영업이익 중 1000억원 이상이 중소기업에 돌아가게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기름값 인하는 그나마 소비자가 덕을 봤지만,수수료 인하 효과에서 소비자 몫은 안중에도 없다. 게다가 공정위는 엊그제 유통업체들이 10년간 매출 증가율보다 순이익 증가율이 7배나 높았다는 왜곡된 자료를 언론에 흘려 사전 정지작업까지 벌였다. 순이익에 수수료와 무관한 주식 · 유형자산 매각이익까지 다 집어 넣어 계산한 것이다. 이런 꼼수는 김동수식 과잉 충성의 결과다. 이건 좌익도 아니고 완장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