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요즘 하는 일을 보면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라면 블랙'가격이 비싸다고 뭇매를 퍼부어 생산중단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품 가격은 마케팅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인데도 공정위는 투입재료 원가를 분석해 '폭리를 취한다'는 식의 압박을 가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신제품 마진이 기존 제품과 같아야 한다면,기업들은 막대한 개발비를 투입하는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 기존 신라면 가격을 올리는 손쉬운 선택을 할 것이다.

값싼 주유소를 찾아가라고 정부가 종주먹을 들이대는 것도 웃긴 일이다. 가격은 상품을 선택하는 여러 기준의 하나일 뿐이다. 가격이 낮은 곳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인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 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받아다 배급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정부에서 조만간 나올지 모르겠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 상생 협약을 맺으면 납품가 인하 압박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착각을 심어주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별천지 생태계는 시장에 없다. 더 나은 거래선을 선택하거나,기존 거래업체와 흥정하는 것은 기업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정부는 거래업체들을 다 끌고가는 것이 '생태계 경쟁력'이고 '공생발전'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시장은 이해관계자들 간 협약이나 정치적인 타협이 작동하는 곳이 아니다. 예컨대 10여년 전만 해도 사진을 찍으려면 동그랗게 말린 필름을 카메라에 집어넣어야 했다. 지금은 반도체 메모리칩을 끼워넣는다. 이런 변화는 정부나 정치권의 개입 없이 일어났다.

코닥 후지필름 코니카 등 카메라 필름을 생산하는 회사에도 경영자와 노동자들,부품업체들이 공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 이해관계자의 협약이나 정치적인 타협이 시장에 작동했다면 디지털카메라 같은 혁신적인 상품은 상용화되지 않았거나,서서히 바뀌도록 하는 결정이 내려졌을 것이다.

태블릿PC가 뜨자 두 손을 든 곳은 세계1위 컴퓨터회사인 HP였다. 오늘의 1등이 내일의 1등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곳이 시장이다. 노키아와 모토로라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들도 맥없이 추락했다. 공고한 구질서를 무너뜨린 프랑스혁명은 역사적으로 매우 드문 사건이지만,시장에선 '기존 질서의 파괴'가 수시로 일어난다.

시장의 기준은 '선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상품들을 대상으로 실시간으로 투표한다. 자신의 의사를 아무런 제한 없이 표출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하고,창의적인 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는 가급적 없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장은 민주주의와 뿌리가 같은 '집단 지성의 경연장'이다. 시장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시장의 크기를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책임지는 정치권은 시장을 넓히는데 별 관심이 없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중요한 시장 확대 조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대신 선거 표심을 얻겠다며 경쟁적으로 복지 환상을 불어넣고 있다.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기보다는 시장 밖 안식처로 사람들을 끌어내는 데 더 혈안이다. 다른 사람이 내는 세금이나 기부금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복지를 당연시하고 있다. 요즘 한국 정치권의 복지논쟁이 반(反)시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