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잦아들면서 늦더위가 시작됐다. 집에만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이기에 오랜만에 아내와 바람도 쐴 겸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진열대의 상품이 아닌 한 쌍의 중년부부였다. 언성을 높이며 서로 다투는 모습이었는데 기분 좋게 장을 보러 나온 다른 가족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옛말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부부싸움은 상처내기'라는 신조어가 더 와 닿았다. 최근 통계는 20년 이상 혼인관계를 유지하다 이혼하는 이른바 '황혼 이혼'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1 사법연감' 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11만858건 중 동거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이 2만7823건(23.8%)이었다. 2006년 19.1%에서 2007년 20.1%,2008년 23.1%,2009년 22.8%로 증가세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황혼 이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급증 이유라는 분석이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남성들의 권위적인 행동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아내들이 남편의 퇴직 시기에 맞춰 이혼을 요구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우리나라보다 더 오래 전부터 결혼생활에 불만이 많았던 탓에 남편이 퇴직금을 받고 경제력을 상실하면 같이 살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트에서 본 모습이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문화가 갖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권위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20년 이상을 함께한 부부라면 결혼식장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는 주례 선생님의 거듭되는 당부를 들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만나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함께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그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게 하는 원동력은 소통이 만드는 이해와 배려가 아닐까 싶다. 오랜 시간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게다가 사회생활이나 자녀교육 등으로 바쁜 시기를 넘기느라 소통을 미루면 그만큼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사회가 점점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소통능력을 성공을 위한 중요한 능력으로 꼽고,온라인에서도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집 밖에서는 소통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내 가족,특히 내 배우자와 소통하는 데는 무심한 것이 사실이다. 배우자는 생활 속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지원군이다. 지원군이 있는 편과 없는 편의 경쟁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평생의 지원군을 확실한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소통을 시작하며 다가오는 가을을 새롭게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박현구 < 한국지멘스 헬스케어 총괄대표 hyeongu.park@siemen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