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자제하라고 압박하자 은행들이 내달 1일부터 대출금리를 0.1~0.2%포인트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얼마 전 일부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중단했다가 맹비난을 들은 터라,그런 극단적인 수단보다는 가격(금리)을 올려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물론 은행들의 고충을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정부의 서슬이 퍼런 데다 넘치는 유동성을 굴릴 곳이 마땅치도 않을 것이다.

사정이 그렇더라도 대출금리를 올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만큼 예금금리도 인상하는 게 당연한 순서요,상식이다. 하다못해 중국집도 재료비 등 원가 부담이 커졌다는 명분이라도 있어야 자장면 값을 올린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가뜩이나 쥐꼬리만한 예금금리를 올리기는커녕 시중 채권금리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또 낮추는 판이다. 은행의 대출원가라 할 수 있는 정기예금 금리는 대개 연 3%대이고 연 3.1~3.2%에 불과한 곳도 있다. 5%에 육박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예금자들은 앉아서 원금의 1%포인트 이상을 손해보는 구조다.

결국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줄이는 데 따른 수익성 저하를 대출금리를 올려 보전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압박은 더할 나위 없는 핑계거리인 셈이다. 예금금리는 내리고 대출금리만 올리면 은행으로선 더욱 수지맞는 장사를 할 수 있다. 국내 18개 은행은 이미 상반기에만 10조원을 벌어 작년 한 해 순익을 넘어섰다. 정부가 깔아준 멍석 탓에 예대마진은 더욱 커질 것이고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은 따 놓은 당상이다. 이런 장사도 없다.

우리는 은행들의 이 같은 사업 수완이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시장금리는 내려가는데 가계대출을 억제하라고 으름장을 놓으니 자유화된 시장가격인 금리에 왜곡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가 개입할수록 초과이익은 커지게 마련이다. 과거 관치금융 시대에 꺾기니,대출리베이트니 하는 편법 · 불법이 활개쳤던 것과 마찬가지다. 826조원에 달하는 가계대출을 억제할 정공법은 제대로 된 금리 · 통화정책뿐이다. 묘수만 찾다간 더 큰 시장 왜곡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