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응시하는 여인의 눈물이 이슬처럼 빛난다. 천 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사진은 짧은 순간을 포착해 현실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미적 감흥을 전한다. 관람객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사진도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다. 미국 아방가르드 사진의 대가 만 레이가 첫 번째 연인 키키 드 몽파르나스의 얼굴에 눈물 오브제를 활용해 찍은 1932년작 '유리 눈물'이다.

만 레이의 흑백사진을 비롯해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인 프랑스의 으젠 앗제,독일의 빌 브란트,한국의 주명덕,프랑스의 뤼시앵 클레그 등 20세기 사진 거장들의 작품이 도심 화단을 수놓고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갤러리에서 다음달 18일까지 열리는 '삶의 기록-만 레이와 사진 거장전'에는 20세기 대표 사진작가 7명의 작품 105점이 걸렸다.

뉴욕 다다이즘의 선구자 만 레이의 작품은 20여점.사진은 물론 화가,조각가,영화감독 등 멀티아티스트로 활약한 그의 1926년작'흑과 백'은 마르셀 뒤샹의 권유로 파리에 정착한 후 다다이스트들과 친해지면서 탄생한 걸작이다. 키키의 세련된 얼굴과 아프리카 가면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짙게 화장한 게이들이 입맞추는 모습을 찍은 1930년작 '키스' 역시 차분한 명상과 사색을 이끈다.

40세부터 사진 작업을 시작한 으젠 앗제의 대표작도 여러 점 출품됐다. 산업혁명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파리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들이다. 광학렌즈가 달린 18×24㎝ 크기의 뷰카메라로 대상을 찍은 이미지들이 색다르다.

뤼시앵 클레그가 파블로 피카소를 찍은 작품도 눈길을 끈다. 클레그는 1953년 피카소를 만나 자신의 사진을 보여준 후 인연을 맺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피카소의 만년 모습과 떠돌이 곡예사들,아를의 폐허,죽은 동물들을 포착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일본 사진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호소에 에이코의 '로사' 시리즈는 여체를 솔라리제이션 기법(네거티브 인화)으로 왜곡시킨 작품이다. 11세 때 경험한 히로시마 원폭의 기억과 그때 본 잔상을 사진에 투영해서인지 이미지 속에 흑과 백이 반전된 신체 이미지가 흥미롭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도호쿠 지방을 여행하며 무용가 히지카타와를 찍은 '가마이타치'시리즈는 일본문화의 근대성,원시성,토착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만 레이의 조수로 일한 빌 브란트는 벌거벗은 여성을 몽환적으로 담은 작품을 내놓았다. 주명덕 씨의 '서울 청진동'에서는 1960~1970년대 경제성장과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진 전통 가옥을 통해 '한국의 미'를 보여준다.

이리나 이오네스코가 딸의 누드를 찍은 '거울의 신전'에서는 에로틱하고 퇴폐적인 분위기와 동시에 고전적인 미를 엿볼 수 있다.

김영섭 김영섭사진화랑 대표는 "사진은 다른 예술 장르보다 동시대의 사회나 문화를 더 직접적으로 반영한다"며 "대가들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삶의 기록과 예술적 향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2)726-442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