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에라스무스,스티브 잡스,오프라 윈프리는 모두 사생아로 태어났다. 다빈치는 공증인인 아버지와 날품팔이 어머니의 혼외 자식이어서 일찌감치 친모의 품을 떠나 계모 손에 컸고,에라스무스는 신부의 아들로 부모 얼굴도 모른 채 수도원에서 양육됐다.

잡스와 윈프리는 미혼모 소생.잡스는 출생 즉시 입양됐고,윈프리는 외할머니 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자랐다. 뿐이랴.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유복자로서 어린 시절 아버지가 계속 바뀌는,기막힌 나날을 보냈다. 이들은 그러나 환경에 상관없이 역사를 만들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주인공들은 시 · 공간을 뛰어넘어 수많은 이들의 등불이 된다. 타고난 혹은 후천적 신체 장애를 이겨낸 이들도 마찬가지다.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차관보에 이른 강영우 박사나 척추 장애를 극복한 이승복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주는 가능성엔 설명이 필요없다.

27일부터 9월4일까지 대구에서 열리는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와 시각장애 선수 제이슨 스미스가 관심을 모으는 것도 같은 이치다. 피스토리우스는 종아리뼈가 없어 생후 11개월 때 무릎 아랫부분을 절단한 데다 6살 때 부모가 이혼,홀어머니 아래서 성장했다.

그의 이번 출전은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2006 · 2007년 100 · 200 · 400m에서 장애인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하려 했으나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서 '플렉스 풋'이란 탄소 소재 의족이 기술 장비에 해당된다며 출전을 금지하는 바람에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판정을 기다려야 했다.

2008년 CAS가 '보철 다리로 부당한 이점을 얻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IAAF의 판정을 뒤집었지만 기록이 400m 출전 기준에 못미쳐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올봄 45초07로 세계선수권 출전 A기준(본선 진출 가능 기록 · 45초25)을 통과,정상인과 당당히 겨루게 됐다.

시각장애인 스미스의 100m 기록은 B기준(출전 가능한 최소 기록) 10초25보다 빠른 10초22다. 두 사람이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는 알 길 없다. 순위야 어떻든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이들이 전해줄 기적과 희망의 메시지는 무한할 게 틀림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