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시인(사진)의 여섯 번째 시집 《진경산수(眞景山水)》(서정시학 펴냄)는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수묵화처럼 그려낸다. '진경산수' 연작 29편과 청학재 시편 31편은 오래 전 시인이 떠나온 세계,고개 너머 농촌의 삶과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시인은 자식을 육남매나 둔 아버지와 어머니,초등학교 시절 총각 담임선생님,장동영감,머슴 삼식이,시골장터 약장수 같은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향교 고갯마루,구구구 돌아다니던 씨암탉,한 솥 가득 끓인 쑥국 등 시골 풍광도 평화롭게 펼쳐놓는다.
'너무 오래 있어 가끔은 잊고 있었지 망두석 같이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 그래 늘 그곳에 있었지// 노을이여/ 주르륵 눈물지는 옷자락이여/ 잊었다고 말해도 잊혀질 수 없는/ 너무 낡은 풍경이여.'('굽은 소나무 한 그루' 중)
시집의 시들은 '선경(先景)'과 '후정(後情)'이라는 전통시의 형식을 따른다. 산문과 운문을 병치시켜 이야기와 시,풍경과 인식이라는 효과를 극대화한다. 여름의 들머리 등산객들이 솔숲의 노천 막걸리집에서 술잔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가만 부끄러워 옷고름을 푸는 서산 노을'(진경산수1)을 발견하고,별 볼일 없는 시골장터 약장수 앞에 모인 꼬맹이들의 모습에서 '늘 별 볼일 없는 게 먼저다'(진경산수3)라는 생각을 끄집어 낸다.
시인은 "사는 일이 다 풍경 같다. 꽉 차지 않고 없어도 텅 비지 않는 수묵 같다"고 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