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건 사랑만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면 모든 게 달라진다. 대중가요도 그렇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이 퇴폐적이라며 방송 금지됐던 1974년에서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92년 이 땅에선 서태지의 '난 알아요'(사랑을 하고 싶어.너의 모든 향기.내 몸 속에 젖어 있는 너의 많은 숨결)가 판을 쳤다.

'교실 이데아'('7시30분까지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전국 900만 아이들의 머리 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도 마찬가지.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불신 조장,쟈니리의 '내일은 해가 뜬다'가 현실 부정이란 이유로 금지됐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솔직함과 자유로움의 표현이란 이름 아래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가사가 늘어난 가운데,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이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으면서 청소년보호위원회(청보위)의 음반 심의가 도마에 올랐다. '취했나봐,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아'라는 대목 때문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나치다는 반발과 수요자가 청소년인 점을 감안하면 마땅한 조치라는 주장이 맞선다.

후자의 경우 해당 대목이 청소년들에게 음주를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들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으면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심의의 모호함과 형평성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선이 어디까지인가와 사후 심의인 만큼 어떤 건 걸리고 어떤 건 괜찮거나,국내곡은 걸리고 외국곡은 빠져나가게 두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일리있는 얘기다. 가요는 가사만으로 심의하기 어렵고,모든 문화예술 작품이 그렇듯 특정 대목보다 전체적인 맥락을 감안해야 하는 수가 적지 않다. 그렇더라도 대중가요엔 엄청난 힘이 있다. 듣다 보면 어느 틈에 뇌리에 입력되고 한번 새겨진 것,특히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 각인된 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청소년이 주 수요층인 K팝의 영향력과 중독성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낯설고 거북하게 느껴지던 욕설과 비속어도 자꾸 듣다 보면 무감각해진다. 욕설과 선정적 표현 투성이 가요에 대해 유해매체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심의가 불편하고 싫으면 스스로 자율성을 제고하면 된다.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자유의 전제조건은 책임이다. 가요도 예외일 수 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