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들은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평생을 보냈다. 그들은 은퇴한 뒤 소중히 여겼던 직장에서의 역할을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막상 가정에 돌아가보면 평생을 고생한 노고를 치하받기는커녕 소외당하기 일쑤다. 가족 역시 가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한국보다 일찍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에는 '은퇴 남편 증후군(RHS)'이라는 용어가 있다. 은퇴 후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 아내들이 두통이나 손발 떨림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이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아내들의 스트레스가 이해되는 면도 있다. 평생을 가사일에 애썼던 아내는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드디어 가정 운영에서 은퇴할 시점인데 다시 남편의 세 끼니를 챙겨줘야 한다니 달갑지 않다. 그렇다고 남편이 매 끼니를 손수 차려먹기도 어렵다. 할 수 있는 요리는 라면 정도인데,가끔 한번씩 먹는 라면이야 맛있지만 자주 먹으면 물릴 수밖에 없고 건강에도 이롭지 않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고 요리를 어떻게 배워야 할지 모르겠으니 문제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변에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준비돼 있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아버지 요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4년 이상 운영한 지자체 관계자에 따르면 참가자의 교육 수료율이 100%에 육박하고 과정이 끝나면 재수강을 신청하는 등 인기가 상당하다고 한다. 초기에는 30대 남성이 몰렸지만 최근에는 50대 이상이 대부분으로 수강자의 연령대도 변하고 있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주관 '골드 쿡'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중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중년에 필요한 영양정보,올바른 식생활습관 등도 함께 교육하고 있다.
별도로 시간을 내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어렵다면 아내가 가사일을 할 때 옆에서 거들어보는 건 어떨까. 식사준비를 할 때 옆에서 도와줘보자.이 외에도 주말을 이용해 화분에 물주기,쓰레기 분리 배출하기 등 작은 것부터 가사일을 시작할 수 있다. 이런 작은 노력이 은퇴 후 가정의 행복을 만드는 든든한 적립금이 된다. 본인의 생존전략이 될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이번 주말에는 더운 날씨로 입맛을 잃은 가족을 위해 간단한 비빔국수를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30분을 투자해 멋진 남편,멋진 아빠가 될 수 있다.
하만덕 < 미래에셋생명 사장 mdha426@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