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리학자 샤를 에두아르 브라운 세카르는 개와 기니피그의 고환을 으깬 용액을 자신에게 주사하곤 했다. 그래야 젊은 시절의 스태미너와 지적 능력을 되찾는다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1840년 파리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분비학 창시자의 한 사람이었는데도 '돌팔이'만도 못한 짓을 했던 거다. 보로노프라는 외과의사는 한술 더 떴다. 회춘에 특효라며 원숭이 고환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로 이름을 날렸다. 이 터무니없는 수술을 받은 남성이 수백명에 달했단다.

'과학'으로 포장된 보신제나 회춘비법을 맹신하기로는 우리도 만만치 않다. 1990년대 중반 멜라토닌이 국내에 알려졌을 때 반응이 대단했다. 현대판 불로초라는 소문이 돌며 해외 여행객들이 앞다퉈 사들고 왔다.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학계의 경고가 나오고 나서야 붐이 잦아들었다. 얼마 후엔 DHEA 바람이 불었다. 회춘제로 알려지면서 LA와 뉴욕 상점엔 싹쓸이 쇼핑으로 물건이 바닥났을 정도다. 성인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거품이 꺼졌다.

의학 상식이 널리 퍼졌는데도 보신 · 회춘제에 대한 과신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귀가 솔깃해지곤 한다. 묘를 이장한 자리의 시신 아래에 고였던 물을 한 잔에 수십만원씩 받고 팔아먹은 사례까지 있었다. 최근에도 호르몬제와 태반 등이 특효약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도 해외여행을 가서 뱀 쓸개나 해구신 파는 곳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중국에서 태아의 시신과 태반으로 만들어진 '인육 캡슐'이 국내에서 보신제로 유통되고 있는 모양이다. 병원에서 빼낸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약재 건조용 전자레인지 등을 이용해 만든 캡슐이 은밀히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면 중국 현지 가격보다 수십 배 비싸져서 조선족 브로커에 의해 유입되고 있다고 한다. 관세청 조사결과를 두고 봐야겠지만 사실이라면 충격적이다.

보신제나 회춘비법의 실체는 대체로 비슷하다. 효과가 없는 건 고사하고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기 일쑤다. 오랜 임상시험을 거친 약이라 해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기 몸을 망치는 위험을 감수하겠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이번엔 너무 했다. '보신의 타락'이 어떤 한계를 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