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가들이 가격 인상을 요구하며 우유업체에 원유(原乳) 공급을 중단한 3일 서울우유 용인공장.오후 1시 찾아간 이 공장에선 '흰 우유'를 생산하는 9개 생산라인이 모두 멈춰 있었다. 때 아닌 물청소가 한창이었다. 박영호 공장장은 "집유차 10여대가 매일 아침 350t의 원유를 실어오는데 오늘은 전혀 공급받지 못해 생산이 불가능했다"며 "일단은 기다리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장 관계자는 "어제 새벽에 받은 원유로 전날 야간조까지는 흰 우유를 정상적으로 생산했다"며 "하루 생산 중단으로 당장 우유제품 품귀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4일 밤이나 5일 아침에는 흰 우유를 찾기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낙농가들의 모임인 한국낙농육우협회는 ℓ당 704원인 원유가를 173원 올려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시적 집유(젖소에서 우유를 짜는 것) 거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날 원유 공급을 중단했다. 낙농가의 이런 인상 요구에 맞서 우유업계는 인상폭을 당초 41원에서 81원으로 물러섰지만, 이날 오후 2시부터 7시간 넘게 이어진 협상은 결렬됐다.

낙농가들의 원유 납품 중단으로 서울우유 남양유업 매일유업 등의 유가공업체들은 공장가동률을 평균 30%가량 낮췄다. 일부 업체는 전날 야간 집유를 통해 원유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찬호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관(국장)은 "하루 정도 원유를 납품하지 않더라도 큰 차질은 없지만 2~3일 이어지면 문제가 생긴다"며 "생산비 책정 방식에 대한 몇 가지 쟁점에는 양측이 합의를 봤지만 가격에서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 국장은 "그동안 협상 소위원회에 안 들어갔는데 이날 8차 소위원회에는 워낙 급해서 담당 과장이 참석했다"고 덧붙였다. 9차 소위원회는 5일 열릴 예정이며 4,5일엔 원유가 정상적으로 공급된다.

원유 가격은 3~5년 단위로 5% 이상의 변동 요인이 생겼을 때 낙농진흥회가 낙농가와 유업계의 의견을 조율하고,농림부가 최종 가격을 고시하도록 돼 있다. 한 우유업체 고위 관계자는 "낙농진흥회 차원에서 협상을 벌인 다음 정부가 원유 납품 가격을 고시하는 제도 자체가 구조적으로 잘못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유 납품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면 제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정부의 물가 안정 시책에 어긋날 뿐더러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 감소로 낙농업체와 우유업체 모두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낙농육우협회 측은 "최종 협상 시한으로 정한 5일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무기한 납품 거부도 불사하겠다"고 밝혀 자칫 '우유 공급대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유업계에선 또다시 '낙농가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우유업체 관계자는 "거래해온 축산농가들을 지키기 위해 경영진이 직접 나서 연일 낙농가를 방문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유업계는 작년 말에도 구제역으로 인해 원유 공급이 줄어들자 거래선을 뺏어오기 위한 '목장의 결투'를 벌였었다.

임현우/서보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