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새로 시작된 정부 사업 가운데 예산을 받아놓고 한 푼도 집행하지 않은 사업이 41개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전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예산을 먼저 확보하고 보자는 식의 발상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2일 정부가 국회예산정책처에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작년에 금융성 기금 사업을 제외하고 새로 재정이 투입된 신규 사업은 449개,예산은 2조9281억원이었다. 이 중 준비한 예산을 모두 쓰지 못한 사업(집행률 90% 미만)은 절반가량인 197개나 됐고 심지어 집행률이 0%인 사업도 41개였다. 예산은 642억원이다.

국토해양부가 23개 사업으로 가장 많았고,국방부(5개 사업 · 65억원) 문화체육관광부(4개 사업 · 42억원) 방위사업청(3개 사업 · 55억원) 등도 1개 이상이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예산만 먼저 받아놓고 총 사업비를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는 데만 1년이 걸려 예산 집행을 못한 경우가 16개 사업으로 가장 많았고,아예 계획이나 수요 파악도 미흡한 사업(5개 사업)도 있었다. 취소되거나 애당초 불필요한 예산이었다고 판정된 사업도 각각 3개였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총 2065억원의 사업비가 책정된 국토부의 국가상징거리조성 사업은 작년에 처음으로 5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후에야 사업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사업이 폐지됐다"고 지적했다. 5억원의 세금만 낭비한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사업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정부나 정치권이 예산부터 받아놓고 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회의원들은 2009년 말 예산 심의 과정에서 32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해 2558억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각자의 지역구 개발사업이다. 하지만 사업 타당성 조사도 없이 확보한 이 같은 예산은 작년에 81.8%인 2092억여원이 다른 사업에 사용됐다.

정부 관계자는 "받아놓은 예산을 안 쓰면 다음해 예산이 깎이니까 있는 돈은 일단 다른 사업에 넣는다"며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라고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