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아냥 죄'는 정부 경제정책에 몇 점을 줄 건지를 묻는 언론 질문에 "낙제는 아니다"고 말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을 겨냥한 듯 싶다. 전경련 시비론은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과 추가 감세 철회를 "즉흥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타깃으로 했다.
정 의원 말대로 한국의 대기업과 전경련이 과연 절대권력일까. 미국 워싱턴에 있는 재계의 최대 이익단체 미국상공회의소가 그의 주장을 듣는다면 가당찮다고 실소할 일이다. 미국 상의 건물은 라파예트 광장을 사이에 두고 백악관 코 앞에 위치해 있다. 미국상의는 의회 의사당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백악관이 내놓는 정책을 조롱하기 일쑤다. 의회,백악관,규제당국,법원을 대상으로 '회원사의 사업을 위해 싸운다'는 전투적 슬로건을 걸어놓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백악관 주인 자리를 놓고 앞다퉈 유세전을 펼쳤던 2008년 1월의 일이다. 토머스 도너휴 미국상의 회장은 "대선 후보들,의원들,언론이 쏟아내는 반(反)기업적이고 포퓰리스트적인 발언을 우려한다"며 "이 사회에서 누가 일자리와 부(富),공익을 만들어내는지,누가 그런 혜택을 받아먹는지 우리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정치권과 언론 보도내용을 비판했다. 그렇다고 의원들이 도너휴 회장을 의회 청문회에 세운 적은 없었다.
미 상의의 파워는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층 맹위를 떨쳤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의료보험 및 금융감독개혁법안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선봉에 서서 반대 운동을 벌였다. 정부 정책을 비아냥거리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의회의 입법 활동에 시비를 거는 정도가 아니다. 미 상의는 1998년부터 입법 로비 활동에 7억5000만달러를 투입했다. 골드만삭스 다우케미칼 셰브론텍사스를 포함한 기업에서 기부받은 것 등이 재원이다.
'개별 입법기관'으로 불리는 의원들을 갈아치우는 영향력 행사도 예사다. 미국상의는 지난해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오바마와 여당인 민주당을 굴복시키면서 개혁법을 도입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미국상의 선거자금 5000만달러를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진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 자리를 15년 만에 탈환했고,상원 의석을 여섯자리 늘렸다. 미국상의가 후원한 59명의 공화당 후보 가운데 38명이 당선됐다. 공화당 정책이 미국상의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기 때문에 지지를 받은 것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에 패한 뒤 미 상의를 찾아 취임 후 첫 연설로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했다.
미 상의에 견주면 청와대 호출에 달려가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생색을 내야 하거나,국회 움직임에 안절부절 못하는 한국의 대기업과 전경련의 존재는 초라해 보인다. 이들이 포퓰리즘적 정책을 비판했다고,아니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북한식 세습체제'니 '서민경제 파탄 세력'이니 매도하는 정치권이야말로 '울트라 슈퍼 갑(甲)'임을 확인하고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워싱턴=김홍열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