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노동운동'을 기치로 내걸고 6월 말 예정됐던 제3노총의 출범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그동안 설립을 주도했거나 참여할 예정이던 노조들이 잇따라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투쟁,정치투쟁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아온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기존 양대노총 대항마로서의 제3노총 설립이 사실상 무산될 공산이 커졌다.

27일 노동계에 따르면 그동안 제3노총 설립의 중심축인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코오롱 KT 기아차 등 민간 대기업 노조들이 속속 이탈하거나 참여 포기 움직임을 보이고 도시철도노조,공공연맹 등 제3노총 설립에 회의적 시각을 갖는 노조들이 늘고 있다. 지난 4월 민주노총을 탈퇴하며 제3노총 설립의 선봉에 나선 서울지하철노조마저 새 노총 설립에 거부감을 갖는 노조원들이 많아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3노총 설립이 삐걱대는 이유는 무엇보다 설립 목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모 공기업 노조위원장은 "제3노총은 상생의 노동운동이라는 바람직한 목표를 갖고 있지만 현장 노조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구체적인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며 "1990년대 민주노총이 탄생한 것은 기존 한국노총의 어용노선에 대한 반발 세력이 많았기에 가능했지만 제3노총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3노총 설립 추진 세력이 내세우고 있는 '국민을 섬기는 노동운동''상생의 노동운동'은 취지는 좋지만 상급단체로서 조직을 엮을 만한 지향점이 모호해 현장 노조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제3노총의 또 다른 목표인 사회 양극화 해소와 고용 창출 문제도 기존 양대노총이 이미 선점한 이슈로 차별화가 힘들다는 분석이다.

제3노총이 현 정부의 지지를 받는 등 다소 정치적 색채를 띠는 점도 현장 노조원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다. 김홍렬 코오롱 노조위원장은 "제3노총이 상생의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상급단체로 설립되는 것 같아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참여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 색채가 느껴져 몇 개월 전부터 아예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연수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과 함께 제3노총 설립을 이끌던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울산동구청장 후보를 지지하는 정책협의를 맺는 등 정치적 행보를 보인 뒤 조합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고 그로 인해 현대중공업 노조원 중 상당수가 제3노총 설립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운동이 독립노조 중심으로 이동한 것도 제3노총 설립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KT,현대중공업 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한 뒤 상급단체에 납부하던 연간 수십억원의 노조비를 내부 조합원들의 복지를 위해 쓰고 있어 일선 조합원들은 상급단체가 없는 것을 더 좋아한다. KT 노조 간부는 제3노총 설립에 가담할 것이란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제3노총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제3노총이 설립돼도 가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제3노총 설립의 실무 총책임을 맡고 있는 김준용 서울지하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요즘 일선 노조원들은 상급단체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올 가을에 몰려 있는 사업장별 노조위원장 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 제3노총 설립 전략을 다시 짤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종쇄 위원장도 "고민을 더 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해 제3노총 설립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윤기설 노동전문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