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기욱 씨(33)는 2006년 가을 첫 수업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저런 걸 물어볼까' 싶은 기초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김씨를 놀라게 한 건 교수나 학생 누구도 이런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수는 오히려 '훌륭한 질문'이라며 학생을 격려했다. 김씨는 "한국에선 수업 중에 모르는 게 생겨도 '나중에 혼자 책 찾아보면 되지'라고 넘어가기 일쑤지만 여기선 질문하지 않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선 이렇게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질문하는 태도를 '후츠파'라고 한다. 후츠파는 한국인의 '정(情)'처럼 유대 민족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다. '주제넘은' '뻔뻔한' '오만한' 같은 부정적인 뜻부터 '놀라운 용기' '배짱' 등 긍정적인 의미까지 함께 담고 있다. '뻔뻔함'이 이스라엘을 과학기술 강국으로 만든 토대라고 분석하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자유로운 생각을 이끄는 후츠파

전 세계 유대인 수는 이스라엘 국민 600만명을 포함해 1300만명가량.전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2%에 그치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178명으로 전체의 22%에 달한다. 물리 47명(26%),화학 30명(20%),의학 53명(28%) 등 특히 과학분야에서 높은 성과를 거뒀다. 이스라엘 국적을 갖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는 9명으로 이 중 아다 요나쓰(72 · 2009년 화학상) 등 5명이 2000년대 이후 수상자다. 1948년 건국한 작은 나라의 저력이 무섭다.

이스라엘 과학기술의 저력은 연구 · 개발(R&D)에 '올인'하는 국가정책과 '후츠파'로 대변되는 토론문화에서 나온다는 분석이다.

이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율은 4.5%로 세계 1위다. 2위는 3.2%의 일본,3위는 2.7%의 미국이다.

이스라엘 대학에선 교수든 학생이든 서로 의견이 다를 땐 몇 시간이고 '끝장 토론'을 벌인다. 와이즈만연구소 물리학과에서 포스트닥터 과정을 밟고 있는 최형국 씨(33)는 "한국에선 교수와 다른 의견을 내려면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는 각오를 해야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목소리를 못 내면 바보취급을 당한다"며 "나이 지긋한 교수들도 언제나 질문하고 토론하는 자세가 돼있기 때문에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고 전했다.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수업과정

석 · 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와이즈만연구소는 놀랍게도 공학 전공을 두지 않고 있다.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 등 순수과학만 가르친다. 1959년 세계 최초로 R&D와 상업화를 함께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연구소라는 설명이 귓전에 맴돌았다. 다니엘 자이프만 와이즈만연구소장은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며 "이곳에서 배운 과학인재들이 20~30년 후 경제 발전을 이끌 신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멀리 보는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소에서 학생들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 능력'이다. 잠재 능력을 발굴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하고 창의적인 학습 방법을 스스로 개발하는지를 관찰한다. 석사과정에 입학하면 반드시 1년간 자신의 전공이 아닌 다른 학과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생물학 전공자라면 화학 물리학 수학과정을 4개월씩 나눠 배우는 것이다. 때문에 1학년 수업은 다양한 전공 학생들이 섞여 듣게 마련이다.

학문 간 통섭이 가능하다. 안그래도 '후츠파'한 학생들이 잘 모르는 전공 수업을 듣다 보니 난상토론이 나올 수밖에.팀 단위,실험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학생들은 서로 다른 시각과 새로운 실험들을 접하면서 생각의 폭을 키울 수 있게 된다. 창의력도 길러진다. 오렌 탈 와이즈만연구소 화학물리학과 교수는 "다른 분야를 기웃거려봄으로써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볼 수 없는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창의력이 길러진다"고 설명했다.

레호봇(이스라엘)=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