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경제 단체장들과 기업 총수를 국회에 '소환'하기로 한 배경에는 내년 총선과 대선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계 때리기'를 통해 '서민의 대변자' 이미지를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여권에 대한 민심이반으로 선거 치르기가 어려워진 한나라당 수도권 소장파가 최근 재계 공격수를 자임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정두언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은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반값 등록금과 추가 감세 철회를 '포퓰리즘'으로 비판한 데 대해 24일 "우리 대기업은 지금 너무 세금을 적게 내고 있다"면서 "전경련에서 무엇이 불만인지 이해가 안가며 그렇게 말할 자격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정태근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은 "포퓰리즘을 얘기하기 이전에 대기업들이 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차별적인 시장 마키아벨리즘이 사회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한 반성"이라고 각을 세우고 있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재계의 태도가 도를 넘었다"며 비판에 가세했다. 손 대표는 "반값 등록금을 위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절규가 어떻게 포퓰리즘이냐"며 "대기업은 양극화 해소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해소의 주체로 나서 달라"고 말했다.

물론 최근 경제단체장들이 잇따라 정치권을 비판한 데 따른 감정적 대응의 성격도 있다. "한번 해보자는 것이냐"며 국회 청문회 운운하는 것은 감정 섞인 재계 군기잡기용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일부 여야 의원은 "이번에 재계 군기를 제대로 잡아 놓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재계도 이번만큼은 정치권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어서 정치권과 재계의 충돌이 우려된다. 경제계는 정치권의 출석 요구에 사실상 보이콧을 선언했다.

재계 관계자는 "지식경제위 공청회에서 부른다고 나가면 다음에 반값 등록금한다고 교육과학위원회에서 부르고,감세 철회 관련해서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오라고 하면 다 나가야 하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전경련은 허 회장이 이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가 끝난 뒤 "국회의 출석 요구에 응할지 여부는 좀 더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내놨지만 내부에선 실무진의 대리 참석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감세철회 정책 등에 대해 나름대로 재계의 의견을 개진할 준비가 돼 있지만 공청회에서 전문가들과 경제정책과 법률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하는 것은 실무진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전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것인데 모두 회원사로 있는 상의는 어느 쪽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꼭 나가야 한다면 담당 임원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자총협회는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입법 활동을 하면서 여러 의견을 듣는 것은 좋지만 강압적으로 출석을 요구하는 것은 호통치고 군기잡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형호/조재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