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를 앞두고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 예측기관들의 수정 전망치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내용을 자세히 보면 그 어느 때보다 물가에 할애된 대목이 많다. 1980년대 초반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많은 분량에 해당된다.

인플레이션은 다양하게 분류된다. 어디서 유발했느냐에 따라 '수요 견인'과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으로 나뉜다. 주로 전자는 경기 과열,후자는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이 원인이다. 증권시장 입장에서 보면 비용 상승보다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거나 수습되는 과정에서 주가가 높게 형성될 때가 많다.

상승 속도에 따라서는 물가가 완만하게 오르는 '마일드 인플레이션'과 하루가 다르게 뛰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구분한다. 일부에서 말이 걷는 모습에 비유해 전자를 크리핑 인플레이션,후자를 갤로핑 인플레이션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마일드 또는 크리핑 인플레이션' 현상은 의욕을 북돋우는 측면이 있어 모든 경제활동에 바람직하다.

경제 성장과 연관시켜 인플레이션을 분류하는 시각도 있다. 경기침체 아래 물가가 올라갈 때는 '스태그플레이션',고성장 속에서 물가도 안정되면 '골디락스 또는 신경제' 국면으로 부른다. 증시에는 전자는 최악의 상황을,후자는 최상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둘의 대표적인 시기는 각각 1980년대 초와 1990년대 후반의 미국 증시를 들 수 있다.

물가에 대한 주요 예측기관들의 수정 전망치를 재해석해 보면 미국 경제에 대해서는 '준(準)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지적한 점이 눈에 띈다.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렸던 1980년대 초반보다는 덜하지만,성장률이 잠재수준 밑으로 떨어지고 소비자물가는 상반기보다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하나의 글로벌 중심국인 중국에 대해 올 하반기 준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점도 우려된다. 특히 3분기에 이 가능성이 높다는 게 많은 기관들의 진단이다. 작년 이후 금리 인상을 주요 수단으로 삼아 추진했던 긴축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해 이미 2분기부터 성장에 부담을 주고 있으며,3분기에는 일시적으로 성장률이 잠재수준을 밑돌 수 있다는 얘기다.

이웃 일본은 더 심각하다. 경제 무기력증에 해당하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구조적으로 5대 함정(정책 · 유동성 · 구조조정 · 불확실 · 빚의 함정)에 빠져 있는 데다 정치 리더십 부재 등으로 성장률과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부(負)의 국면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기관들은 내다봤다. 통계상 착시인 기저효과 등으로 인해 내년에는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들의 물가는 더 이상 오르지 않겠지만,여전히 중앙은행이 설정한 목표선을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또 물가를 잡기 위해 상반기까지 추진했던 금리 인상을 추가적으로 단행할 경우 성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함께 제시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경제성장에 훼손을 주지 않으면서 당면한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 이외의 다양한 인플레이션 대책과 통화당국의 세밀한 운영능력(fine tuning)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예측기관들의 지적은 아니지만 최근 물가와 관련해 새로운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헤지펀드업체 시브리즈파트너스의 더글러스 카스 대표가 처음 사용한 '스크루플레이션'이다.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와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스크루플레이션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과 구별된다. 후자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경기가 침체되면서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지만,전자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쥐어짤 만큼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체감물가가 올라가는 모습을 말한다. 이 때문에 스크루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면 증시는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올 4분기부터 경기가 완만하게 회복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내년 상반기에는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가운데 물가는 잡히는 '준골디락스 국면'의 도래를 예상하는 기관들도 있다.

그런 만큼 어려움이 예상되는 올 3분기,늦어도 4분기가 지나면 좋은 시기가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때까지는 성급한 투자 판단이나 쓸데없는 정보에 전염되는 '인포 데믹',그리고 그때그때 발생하는 각종 악재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리스크 데믹'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