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폰지게임' 덫에 빠진 정치권
많이 알려진 경제용어 중에 '폰지게임(Ponzi game)'이라는 것이 있다. 폰지게임이란 채무자가 끝없이 빚을 굴려 원금을 상환해 나가는 상황을 말한다. 미국에 개발붐이 한창 일던 1925년대 플로리다주에서 찰스 폰지라는 사업가는 세계 21개국에서 통용되는 구매쿠폰 사업을 벌인다며 자금을 모집했다. 90일 만에 원금의 2배 수익을 보장한다는 조건을 내세우며 미국 전역에서 8개월 만에 4만명으로부터 무려 1500만달러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높은 배당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모았을 뿐,실제 그는 아무 사업도 하지 않았다. 투자액 중 일부를 자신이 착복한 후에 다른 투자자에게 돌아갈 배당금은 그 다음 투자자의 납입금으로 지급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모아 이전 투자자의 배당금을 지급했지만 이런 게임이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결국 이 사기행각은 1년 만에 파탄을 맞았고 폰지는 감옥에서 무일푼으로 죽었다. 이런 게임에서는 앞서 투자해 배당을 챙긴 사람은 이득을 보지만 뒤늦게 뛰어든 사람은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이런 게임이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아마 모두가 이 게임에 남보다 앞서 참여해서 배당을 챙기려 할 것이다. 이 게임에 나중에 들어가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이 바로 이런 형국이다. 지금 당장 연금을 받는 사람은 낸 돈보다 무려 7~8배를 많이 받지만 지금의 새내기 직장인인 20대가 연금 수혜자가 되는 2060년에는 연금이 고갈된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 연금의 고갈 시기는 이보다 10년이나 앞당겨진 2050년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사실 국민연금의 이런 문제의 심각성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의 개선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것은 정치권이 찰스 폰지가 폰지게임에서 누린 것과 같은 이득의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제도의 개혁에 책임이 있는 정치권은 현재 연금 수혜자의 인기에 영합함으로써 포퓰리즘에 의한 수혜를 입고 있다. 여야는 모두 현재의 국민연금 구조를 개혁할 때 입게 될 인기 하락과 표의 감소를 감당할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무상급식,무상복지,무상의료 등 '무상' 시리즈도 정치권이 벌이고 있는 일종의 폰지게임이다. '무상' 시리즈의 처음 수혜자는 공짜에서 얻어지는 게임의 배당을 먼저 챙긴다. 정치권은 이런 수혜자의 인기에 영합해서 포퓰리즘에 의한 '폰지의 이득'을 챙긴다. 그러나 그 공짜라는 배당이 나중에 누군가의 주머니로부터 메워져야 한다는 현실을 정치권은 애써 외면하려 한다.

요즈음 한창 논란이 되는 반값등록금제도 마찬가지다. 대학의 운영이 방만했다면 대학재정의 효율화를 통해 과중한 대학생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재원만으로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반값등록금제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의 정치권은 포퓰리즘이라는 '폰지의 이득'에 취해 나중에 반값 등록금제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자가 누가 됐든 억지로 폰지게임의 장을 벌이는 데 정신이 없다.

우리 사회가 이런 폰지게임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국민 모두가 이 게임의 위험을 인식해야 한다. 이 게임은 현재 당장은 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파탄에 이르는 독이다.

복지나 특정 집단의 지원정책을 추진할 때는 항상 누군가의 혜택은 누군가의 비용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 추진자는 반드시 비용 부담의 주체가 누구이고 또 왜 이런 부담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 합의를 바탕으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김지수 < 영남대 경영학 교수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