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유럽 27개국이 유럽연합(EU)을 구성하고 있지만 정치 · 경제 상황과 역사적 경험에 따른 상대국에 대한 경쟁심과 적대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각국의 일상용어 속 상대국에 대한 '비하 용어'가 이를 보여준다.

지난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독교민주당(CDU) 당대회에서 "어떤 나라는 너무 많은 휴가를 즐기고,어떤 나라는 거의 쉬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전쟁을 유럽이 지금 치르는 중"이라며 "독일은 (베짱이 국가들을 도울) 돈이 없다"고 일갈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에 대해 '게으르다'는 식의 표현은 독일 등 북유럽 국가에 만연해 있다. 독일 언론들은 그리스 재정위기 우려가 번지는 것에 대해 '바이러스'라는 자극적 용어를 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 같은 메르켈 총리의 언급에 대해 마누엘 카르발류 다 실바 포르투갈 무역연합회 회장은 "연대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제국주의적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남유럽에선 독일을 비하할 때 '거만하고 옹졸한 수전노''제국주의자' 등의 표현을 자주 쓴다. 프랑스인들은 독일을 비하할 때 '돼지'에 비유하고,이탈리아에선 '시끄럽고 오만한 덩치들'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나치'란 낙인은 각국에서 독일에 대한 비하 표현으로 가장 널리 쓰인다.

독일은 인접국 폴란드와 공유하고 있는 역사 경험이 많은 만큼 폴란드에 대한 비하 표현이 발달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폴란드 경제(Polnische Wirtsschaft)'라는 표현이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허점 투성이의 혼돈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이 표현은 17~18세기 프로이센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웃 폴란드를 낙후된 지역으로 비하하면서 등장했다.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대화하다가 무심히 발언해 외교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