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배낭여행으로 티베트의 깊은 오지를 한 달 정도 갔다 온 사람이‘다사모’에 참석을 했다. 그는 갈 때 어느 정도는 각오 했지만, 그곳에 있는 동안 의식주 어느 것 하나 불편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만약 그곳에서 평생 살라고 하면 과연 살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과, 현지인은 전혀 불편한 표정이 아니었음에 좀 의아해했다고 말한다.

사실 그 사람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도 50여 년 전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가난했지만 그 나름대로 행복했다는 사실 또한. 지금 우리가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편함은 있지만, 인간적인 행복은 느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편하고 불편한 것이 주관적이듯이, 행복과 불행 또한 사람마다 장소마다 느끼는 상대적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덴마크 국민들이라고 한다. 조사에 따르면 몽골이 프랑스보다도 행복지수가 높으며, 1인당 GNP가 790불인 베트남은 우리보다도 행복지수가 높은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평가의 기준인 것으로 보면 경제수준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으며, 가진 것에 관계없이 개인이 느끼는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야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진 것이 적더라도 마음이 편안하면 행복한 것이다.

일본의 한 신문에 흥미 있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다. 한 은행에서 차기 은행장 후보로까지 거론된 임원이 갑자기 사표를 냈다고 한다. 그가 갑자기 사표를 낸 이유는 이제라도 자기 인생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임원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자신은 물론 온 가족까지 희생되어 살아온 것을 깨닫고, 이제는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후 그는 작은 음식점을 내었고 음식도 직접 만든다고 했다. 작은 가게지만 행복은 대형 음식점 못지않다고 했다.

스스로 편한 것을 버리고 힘든 것을 택하면서도 마음은 행복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루 종일 남의 돈만 세고 있으면 자신에게 돌아올 몫 반 푼도 없으니, 자신에게 갖춰있는 보물을 찾아 거지노릇 그만하고 주인으로 살아보라.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고 당부하던 어느 선사(禪師)의 말처럼, 그는 비록 작은 가게이고 수입도 예전보다 적을지라도 내가 주인이 되어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한 것이다. 남이 부러워하는 자리라 해도 자신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행복의 기준은 자신이 되어야 한다.

악어는 밀림 속 늪에 살지만 그곳은 악어에게는 천국이며 최적의 보금자리다. 펜트하우스에서 살면서도 하루하루가 근심과 걱정 속에 사는 것이라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행복은 편안한 마음이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적은 이익을 추구하면 행복한 부자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큰 그릇은 웬만큼 담아도 채워지지 않지만 작은 그릇은 조금만 담아도 가득 차며 오히려 넘치는 경우도 있다. 마음 속 기준을 낮추면 그만큼 행복지수는 높아진다.

사람은 평생을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도 사실은 하루하루가 행복하기 원한다. 아침에 일어나고 다시 저녁에 누울 때 몸은 힘들어도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면 그 하루는 행복하게 보낸 것이다. 하루가 한 생(生)으로, 가진 것이 많아도 편안한 잠을 잘 수 없다면 어찌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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