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의 분위기는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다. 출근한 직원들이 업무를 보기 위해 접속한 내부망 메인 화면에 생소한 문구가 떠 있었던 것."법인카드로 가족들과 식사를 하면 횡령","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횡령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의아해하던 삼성 직원들이 귀를 의심한 건 그로부터 몇 시간 뒤.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이 내부 부정사건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한다는 그룹 측의 발표가 나왔다.

삼성타운엔 정적이 감돌았다. 내부 직원의 범죄사건 연루로 이우희 전 에스원 사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적은 있었지만 내부 감사에 이은 비리적발로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그룹 차원의 감사 결과를 놓고 '종합선물세트'란 표현을 달았다. '비리' 차원에서가 아니라 조직 관리 차원에서 종합적인 허점이 드러났다는 것을 빗댄 설명이었다. 이번 감사에서 적발된 대표적인 비리 사례는 법인카드 부정사용.법인카드는 회사 차원의 공적인 일에만 사용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임직원들의 가족 식사 등 지극히 사적인 용도로 사용된 흔적이 많이 포착됐다. 일부 임직원의 경우엔 한두 차례가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진 정황도 발견됐다. 심지어 '가짜 영수증'을 제출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은 이런 부정행위들이 인사 감사 등 정상적 조직활동을 통해 걸러지지 않았던 것을 '더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다.

1977년 삼성정밀공업으로 시작한 삼성테크윈은 방위사업 등 특수 사업의 성격상 인적쇄신이 어려운 점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올 들어 삼성테크윈의 K-9 자주포 결함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3월께 그룹 차원의 감사가 시작되면서 악재가 겹치기 시작했다. 감사팀이 회계장부를 낱낱이 들여다보면서 일상적인 '경영진단' 차원의 감사가 '비리적발'로 커진 것도 이때였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