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진정성도 전문성도 없는 감세철회
한나라당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14년이라는 짧지만 긴 기간 동안,창당 직후 정권을 내주었다가 10년 만에 되찾아온 뒤 거듭되는 지지율 하락으로 지금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감세와 작은 정부'라는 가치를 기초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라는 전략을 펴가는 전형적인 보수정당으로서 자리매김을 한 정당인데 지금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에 단행한 감세는 그해 가을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이하고서도 지속됐다. '감세와 지출확대'라는 전 세계적인 위기대응방식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이런 감세 기조에 대한 도전이 한나라당 내부로부터 생겨났다. 날로 추락하는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야당이 쓰는 '부자감세'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감세 철회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혼돈은 올해 4 · 27 재 · 보선 패배 이후 더욱 심해졌다. 새롭게 구성된 원내 지도부가 제일 먼저 내놓은 수습책이 감세 철회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나라당 현 지도부와 소장파들에게 묻고 싶다. 첫째, 최근 1년 사이에 감세를 철회해야만 하는 대내외 환경변화가 있었는가? 둘째, 그동안 추진해왔던 감세효과에 대해 충분히 검토한 뒤 내린 감세 철회 주장인가? 조세정책은 그 어떤 정책보다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는데,이렇게 급작스럽게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기에 묻고 싶은 질문들이다. 충분한 검토 없이 떨어지는 인기를 일단 만회해보려고 감세 철회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세율을 인하해 가면서 철저히 그 효과를 검증해왔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 감세의 효과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법인세 감세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80년대 초반에 40%였던 세율을 지금 22%까지 떨어뜨렸는데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법인세 비중은 오히려 2%에서 4%로 커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주요 선진국들의 법인세율 인하 효과가 미미했던 것에 비하면 적어도 우리 법인세 감세가 세수에 미친 긍정적 효과는 인정해야 한다.

전 세계적 감세 시도에서 도출된 하나의 결론은 지출 축소가 동반된 감세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감세 기조를 유지해왔던 한나라당이 집권당으로서 추진해야 하는 것은 감세 철회가 아닌,지출 축소를 통한 재정건전성의 유지이다. 포퓰리즘에 의한 불필요한 지출 확대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무상 시리즈에는 반대하면서 반값 등록금에는 5조원을 쓰겠다고 하는 것은 재정건전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일단 말을 던져 놓고 나중에 검토해보는 식의 준비되지 않은 모습마저 보였다는 것도 실망을 크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은 정책의 위기다. 조세정책 변화의 궁극적 효과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없는 상태에서 '부자감세' '세금폭탄' 등 슬로건만 난무하고 있다. 정책논의 과정에서 진정성과 순수함 그리고 전문성은 사라져 버렸다. '법인세 인하하면 재벌과 부자만 배불린다' '법인세 인하 해줘도 투자는 안 늘리고 현금만 쌓아둔다' 등 너무나 단언적이고 원색적인 말이 정치인 뿐만 아니라 전문가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역사실(逆事實 · counterfactual)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을 경우 발생했을 상황을 일컫는 것이다. 법인세 인하 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면,역사실로서 '인하하지 않았을 경우 투자수준'과 실제 투자수준을 비교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신뢰 받는 정책정당으로 20년 이상의 역사를 써가길 바란다. 그러려면 우선 원칙과 전문성에 충실해야 한다.

안종범 <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