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한국형 헤지펀드' 1호가 설립될 것으로 보이자 여의도 증권업계가 분주하다.

헤지펀드 시장규모가 약 42조원(도입 후 3년내)에 달할 것으로 분석되면서 저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뛰어들기 위해서다. 기존의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사업이 '헤지펀드 시대'에 더이상 성장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증권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비교적 자산규모가 큰 곳들이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헤지펀드 관련 전문팀을 구성하고, 글로벌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고안해내 고액자산가들의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반면 대신증권 등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사업에 사활을 걸고 '선택과 집중'에 나선 증권사들도 눈에 띈다. 대신증권은 지난 2월 오랜 개발 끝에 새로운 은행연계 온라인 증권거래 서비스인 '크레온'을 시장에 내놨다. 브로커리지 분야에서 절대강자로 다시 서기 위한 대신증권의 야심작이다.

향후 발빠르게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에 대응하는 증권사와 반대로 전통의 주식위탁매매 부문을 고집하는 증권사 간 명암이 어떻게 갈릴지 주목된다.

◆ 김석동 "입법전이라도 연내 헤지펀드 도입한다"…업계 "3년來 42조 시장 규모"

금융위원회는 최근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방안과 미래'라는 주제로 투자자문사 CEO 등 업계관계자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시간은 영원히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입법 환경이 어렵기 때문에 일단 시행령을 뜯어 고쳐서라도 빨리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내 '한국형 헤지펀드' 1호가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형 헤지펀드'의 도입 이후 국내 자본시장의 지각변동은 이미 예고되고 있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헤지펀드 제도 도입 3년 내 기관투자가와 거액 자산가들이 일임형랩 투자자문 사모투자전문회사(PEF) 등 대체 투자상품에 묻어놓은 자금 중 10%(42조원)가량을 헤지펀드로 옮길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수탁고(90조7000억원)의 절반 가량을 단숨에 빨아들이는 셈이다.

헤지펀드 시장이 3년 내 42조원 규모로 성장하면 헤지펀드에 자금 대여,청산 결제,펀드 관리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임 브로커리지에서 발생하는 수익만 연간 2조원에 달할 것이란 추산이다.

◆ 성큼 다가온 헤지펀드 시대, 여의도 증권사들 '발빠른 행보'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벌써부터 일부 증권사들과 자산운용사들간 '펀드 오브 헤지펀드'에 대한 판매 경쟁까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펀드 오브 헤지펀드는 3~10개 가량의 전세계 헤지펀드에 분산투자하는 재간접 펀드다.

사내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하는 한편 글로벌 헤지펀드 운용사들과 전략적 제휴도 잇따라 맺어지고 있다. 삼성증권과 대우증권은 지난해 각각 대안투자 전문회사인 영국 MAN인베스트먼트,미국 밀레니엄파트너스 등과 제휴를 맺었다.

삼성증권은 선물매매 운용전략과 글로벌 매크로(Global Macro)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 3곳에 분산 투자하는 '북극성 알파'라는 재간접 펀드를 판매 중이다. 최근에는 유럽에서 롱-숏 전략을 벌이는 헤지펀드를 포함시킨 '북극성알파 스페셜' 펀드도 내놨다.

미래에셋증권의 글로벌 CTA펀드의 경우 운용규모가 약 1080억원(5월18일 기준)에 달해 규모면에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윈튼(Winton)과 트렌스트랜드(Transtrend)의 헤지펀드를 주로 편입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도 2008년 자기자본 1억달러를 투자해 싱가포르에 별도법인인 '우리 앱솔루트 파트너스(Woori Absolute Partners)'를 세워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해오고 있다. 또 '우리 프리미어 클래스' 등 재간접 헤지펀드 11개 상품을 판매 중이다.

자산관리 분야는 이미 증권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자문형 랩 어카운트의 성장세가 폭발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증권사마다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해 프라임 브로커리지(Prime Brokerage) 분야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 중에서 자산 관리 수익을 제외하면 기대할 만한 부분이 많지 않다"면서 "신용 융자 이자 수익은 기대할 수 있으나 브로커리지의 성장성은 제한적이고, 금리 상승으로 인해 채권 매매 수익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미래 우리 대우 등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광폭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순자산 규모가 비슷한 대신증권(1조6800억원)과 동양종금증권(1조2900억원)의 행보는 비교가 된다. 동양종금증권은 지난 2월부터 재간접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해 현재 350억원 수준의 수탁액이 모였다고 밝혔다.

동양종금증권 관계자는 "사모 방식의 재간접펀드를 2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해 매주마다 모집하고 있다"면서 "아직은 초창기라서 절대적 수익을 제공하기 보다는 안정적인 운용을 목적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신증권은 지난 4월에 재간접펀드를 내놓고 판매에 나섰지만 수탁액은 매우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지난 4월 처음으로 재간접펀드를 판매했다"면서도 "공개할 만한 수준의 수탁고가 모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헤지펀드 관련 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면서 "입법이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신증권이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명분으로 브로커리지 강화를 들고 나왔지만 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 먹을 파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도 "지난 4분기 대신증권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235억원, 72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69.7%, 69.6% 감소했다"면서 "브로커리지 영업 부문 부진에 따른 순수수료 수익이 전분기 대비 4.1% 감소한 763억원을 기록하는 등 전 사업 부문의 영업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헤지펀드 시대에 신성장 동력으로 '브로커리지 강화'를 내세운 대신증권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고 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펀드 영업을 많이 하는 증권사와 우리의 사업 방향은 다르다"면서 "자산관리 분야에서 우리가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가 맞을지 최종 답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최성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