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유통업체들이 카탈로그를 만든다. 빼곡한 글씨,촘촘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고객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카탈로그는 별로 없다. 그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면 더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주방용품업체 윌리엄스소노마(Williams-Sonoma)는 달랐다. 용도가 사라져가는 카탈로그를 마케팅 채널로 적극 활용했다. 카탈로그에서 시작해 쇼룸,인터넷으로 이어지는 '멀티채널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각 채널의 역할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윌리엄스소노마는 1990년대 말 이후에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동종 업종 기업의 3~4배에 달하는 성장률이다.

◆카탈로그는 생활정보지

윌리엄스소노마는 카탈로그에 강점을 갖고 있는 회사였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카탈로그의 지위가 흔들렸다. 경영진은 카탈로그의 역할을 재정의했다. '고객을 점포와 인터넷으로 끌어들이는 순수 마케팅채널'이 그것이다.

대신 과거 카탈로그에 부여했던 '상품판매 채널'이라는 짐을 덜어줬다. 또 점포는 고객이 제품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쇼룸(show room),인터넷은 채널 간 연결자(connector) 및 판매처 등으로 각 채널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했다.

이렇게 역할이 정해지자 카탈로그는 변신을 시작했다. 단순한 제품 홍보에 그치지 않고 유익한 생활정보를 담기 시작했다. 또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한 천편일률적 내용과 무작위 배포 방식도 포기했다. 대신 고객의 연령,사는 지역,구매 빈도,연수입,취미 등을 고려한 맞춤형 카탈로그로 변신했다. 계절이나 특정한 시기에 맞는 버전도 내놓았다. 월간,분기별,추수감사절 등 각기 다른 시기에 맞춰 내용을 달리했다. 구매 동기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객의 필요에 따라 가치 있는 정보도 다르게 담았다. 어린이용 가구에 관심이 있을 것 같은 고객에게는 유기농 유아식 만들기 정보를 제공했다. 그 내용은 전문 육아잡지 수준이었다. 이렇게 만든 카탈로그 버전만 50여개에 달했다. 발행 부수도 연간 4억부에 이르렀다.

제품 구매에 큰 관심이 없다고 판단되는 고객에게는 분량이 적은 버전을 발송했다. 1년 이상 구매하지 않은 고객은 카탈로그 발송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노마 카탈로그의 역할은 한마디로 '각인'이었다. 제품의 이미지를 확실히 고객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구매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은 매장의 역할로 넘어간다.




◆채널별 유기적 결합

카탈로그를 본 고객이 직접 매장을 찾으면 직원은 상담과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구매를 유도한다. 예를 들면 소노마 카탈로그를 통해 '새집 꾸미기'를 주제로 한 다양한 상품 정보를 접한 고객이 매장에 가면 집안 공간별 테마가 있는 진열 상품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은 인터넷 차례다. 인터텟에서는 인테리어 팁,재구매 정보,신상품 정보 등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소노마는 지속적인 재구매 및 교체 구매를 유도할 수 있게 됐다. 카탈로그,매장,인터넷은 각각의 확실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셈이다. 이런 카탈로그→매장→인터넷으로,그리고 다시 카탈로그 및 매장으로 이어지는 채널을 통해 인지→체험→구매→재구매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채널 간 확실한 역할 분담은 상품 구색만 봐도 알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는 부피가 작고 계절성이 있거나 화제가 될 만한 상품을 진열한다. '쇼룸'으로서의 역할을 극대화한 것이다. 현장 직원은 방문한 고객에게 직접적인 판매보다는 더 많이 보여주고 상담하는 데 주력한다. 온라인 쇼핑몰은 고객들이 기본 가구에 어울리는 30여 종류의 천(fabric) 등 다양한 상품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고객이 구매를 결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한 상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피가 큰 가구류나 이미 잘 알려진 스테디 셀러,시즌이 지나간 상품 등도 보여준다.

소노마는 온라인 채널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한다. 다양한 신제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온라인에서 살피고 반응이 좋으면 오프라인 쇼룸에 진열하기도 한다.

또 '결혼선물 등록'(wedding registry)이라는 코너도 운영한다. 결혼을 앞둔 고객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담을 통해 사고 싶은 상품을 결정한 뒤 온라인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다. 또 친구들로부터 선물도 받을 수 있다. 고객이 매장에서 바코드 인식기를 들고 다니면서 사고 싶은 물건에 바코드 인식기를 대기만 하면 온라인에 관심 상품으로 자동 등록된다. 그러면 친구나 가족들이 웹사이트에 등록된 상품을 확인한 뒤 해당 사이트에서 바로 구매해 선물할 수 있도록 꾸몄다.

◆고객 분석과 이해가 전제조건

소노마처럼 온 · 오프라인의 다양한 채널을 성공적으로 활용하려면 고객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고객의 구매패턴을 알아야 채널별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소노마는 CRM(고객관계관리) 중에서도 '추천 엔진(recommendation engine)'이란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고객의 인터넷 사용 행태와 오프라인 구매 실적에 따라 맞춤형 상품을 즉석 제안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고객 데이터였다. 소노마는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진 5800만가구에 달하는 고객정보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소노마가 고객 동의를 얻어 수집하는 정보는 680여종에 이른다. 이 데이터를 가공,고객을 세분화한 뒤 개인적인 상황에 맞는 제품을 제안함으로써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노마가 브랜드별 광고비의 90%가량을 카탈로그 제작 발송에 사용하는 것은 이런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수준이 남다르다는 얘기다.

최근 유통 업계에서 '옴니채널 리테일링(Omni-channel retailing)'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모바일,카탈로그,오프라인 매장 등 여러가지 채널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고객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윌리엄스소노마는 이를 가장 잘 활용한 회사 가운데 하나다.

송지혜 베인앤컴퍼니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