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 있는 롯데스카이힐제주CC의 클럽하우스는 얼핏 보기에 평범하다. 이른바 '명문 골프장' 분위기는 아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값비싼 작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코스를 돌아보면 생각이 확 달라진다. 로버트 트렌드 존스 주니어가 설계한 36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품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코스를 아주 어렵게 만들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설계자에게 감리까지 맡겼다. 당시 로버트 트렌드 존스 주니어가 상주하면서 "돌 하나도 허락 없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설계도는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그렸다. 자연 그대로를 살리기 위해 홀 모양만 도려내는 방식으로 조성했다. 코스 주변에 나무가 무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05년 개장한 이곳에서는 국내 여자프로골프대회가 세 차례 열린다. 롯데마트여자오픈,롯데칸타타여자오픈,ADT캡스챔피언십 등이다. 대회를 많이 개최하는 이유에 대해 임종택 총지배인은 "제주에만 골프장이 30개다. 차별화가 안 되거나 스토리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골프장 최초로 서비스인증 KS마크를 획득하고 국가품질 경영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등 대외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코스는 전반적으로 티샷의 중압감이 크다. 대신 굿샷을 했을 때는 보상이 따른다. 라운드할 때 그냥 앞만 보고 가지 말고 가끔 뒤를 돌아보는 게 좋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놀라게 된다. 설계자도 "아름답기로 세계 100대 코스에 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션코스 5번홀은 미 PGA투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이 열리는 TPC소그래스의 17번홀을 연상시키는 '아일랜드 그린'이다. 이곳에서는 '페닌슐라 홀'이라고 부른다. 프로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홀이다. 위에서 부는 바람과 아래에서 부는 바람이 달라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다.

서희경이 2009년 롯데마트여자오픈 첫날 이 홀에서 친 티샷이 그린과 해저드 경계석을 맞고 그린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서희경은 그 행운 덕에 우승했고 그 자리에는 '서희경 돌'이라는 기념비가 들어섰다.

6번홀은 티샷을 두 곳으로 해야 한다. 왼쪽으로 200m 이상 날리는 모험에 성공하면 다음샷이 편해진다. 우측은 안전하지만 두 번째 샷을 할 때 라이가 좋지 않다. 그린 앞까지 우측에 물이 있어 공략하기도 만만치 않다.

힐코스는 고약한 곳에 핀을 꽂았다가 KLPGA 경기위원장이 사임하기도 한 악명의 코스다. 2008년 ADT챔피언십 3라운드 1번홀 그린에서 김보미가 9퍼트 만에 홀아웃하는 악몽을 겪었다. 가시를 품고 있지만 코스의 풍광은 압권이다. 굴곡 있는 그린은 관능적으로 보인다. 7번홀은 이 골프장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지난주 CJ나인브릿지에서 열린 '월드클럽챔피언십'에 경기위원으로 참석한 세계 100대 코스 심사위원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이들은 힐코스에 반했다. 한 위원은 "보통 18개홀 중 6개홀 이상이 기억에 남으면 훌륭한 코스라고 할 수 있는데 힐코스는 9개홀 가운데 6~7개홀이 인상적"이라고 호평했다고 한다.

서귀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