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의 거액 출연료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회당 몇 천만 원을 넘어설 때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도 느꼈지만 억대가 넘어가면서는 감각조차 무뎌지는 실정이다.
최근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 중인 가수와 개그맨들의 출연료가 화제로 떠오르며 또 한 번 스타급 연예인들의 ‘몸값’에 대해 말들이 많다.
여러 번 도마 위에 올랐던 특급 배우들의 몸값에서부터 가수들의 ‘등급별’ 방송 출연료까지 본지가 최초로 공개한다.
최근 MBC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출연진의 출연료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주인공인 가수들의 출연료가 매니저인 개그맨의 출연료보다 낮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가수들의 평균 출연료가 200만 원 선으로 알려진 가운데 일부 개그맨은 가수보다 높은 출연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MBC 측은 개그맨들의 출연료가 인지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가수들의 출연료와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나가수’ 출연 개그맨들은 오히려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낮은 출연료를 받고 있다는 주장.
게다가 음향 설비 등 가수들의 무대를 위한 지원을 감안하면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설명도 덧붙여진다.
단순히 가수 출연료만 놓고 보면 음악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했을 때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다시 말해 ‘나가수’가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음악 프로그램이었다면 출연료 수준이 훨씬 더 적었을 것이란 얘기다.
가수들이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출연료 기준은 경력별 ‘등급’이 주요 근거다.
대한가수협회가 공개한 ‘방송 출연 등급별 출연료’에 따르면 7단계로 등급이 책정돼 있다.
TV 프로그램은 경력 50년 이상과 70세 이상을 원로 특급으로 ‘별결’ 처리하고 경력 40년 이상과 60세 이상은 원로급으로 60만 원 선, 경력 30년 이상을 특급, 20년 이상을 가급, 10년 이상을 나급, 5년 이상을 다급, 5년 미만을 라급으로 책정해 최저 등급 17만 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다.
지금의 이 기준은 지난 2004년 책정된 것으로 7년이 지나는 동안 출연료는 정체 상태다.
가수가 한 번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출연료 몇 배 이상의 비용이 투자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출연료 지급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사실 가수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 불러만 달라는 식의 저자세인 경우가 많다”며 “인기 가수는 CF나 행사 등을 통해 방송 출연료의 몇 십 배, 몇 백 배의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가수들은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할수록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 가수의 매니저는 최근 한 음악 방송에서 1000만 원이 훌쩍 넘는 출연료를 받은 한 걸그룹을 예로 들며 “방송사에서 서로 ‘모시고’ 싶어 하는 가수들은 프로그램에 따라 ‘특별 출연료’가 책정돼 행사 수준의 출연료를 받기도 한다”면서 “방송 외 다른 수입원이 많은 가수들은 출연료까지 높게 받으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인기 스타들에겐 ‘그들만의 등급’
이러한 현상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준대로라면 가수가 예능에 출연할 때도 등급별 출연료를 받아야 하지만 방송사에서 ‘필요해서’ 섭외하는 경우에는 등급과 무관하게 출연료 계약이 이뤄지는 것. 즉 출연료의 실제 기준은 결국 인기인 셈이다.
예능 출연료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특급 MC료다.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유재석과 강호동을 비롯해 최근 몇 년 사이 블루칩으로 떠오른 이승기, 오랜 잠룡인 신동엽·박명수·김용만·김구라 등 인기 MC들에게는 ‘그들만의 등급’이 존재할 뿐이다. 유재석은 프로그램별로 차이가 있지만 가장 먼저 회당 1000만 원대 테이프를 끊었고 강호동 역시 800만~1000만 원대의 최고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기는 ‘1박2일’에서 강호동보다 약간 낮거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출연료를 받고 있으며, ‘강심장’에서도 최고 대우를 받고 있다.
이들의 출연료가 공개될 때마다 ‘적정’ 여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MBC의 한 예능 PD는 “스타는 ‘반짝 버는’, 영원성을 상실한 불안한 자리”라면서 높은 ‘몸값’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몇몇 MC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독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아 역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독과점 구조는 검증된 MC를 기용함으로써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싶은 방송사의 의지도 작용한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은 많은데 막상 몇몇 MC에게만 몰리는 불균형이 초래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올 하반기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시작되면 이들의 몸값 경쟁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미 종편 등에서 거액의 몸값을 물고 공중파 PD들을 대거 영입한 가운데 흥행을 ‘보장’해 주는 특급 MC 모시기에 종편과 일부 케이블 방송이 뛰어들면서 몸값이 2~3배 이상 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유재석과 강호동 등 공중파 프로그램에만 1주일을 풀타임으로 쓰고 있는 이들이 공중파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종편이나 케이블로 옮기기 위해서는 그만한 ‘보상’이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그 근거다.
드라마 연기자도 마찬가지다. 이미 어마어마한 개런티를 받고 있는 배우들이 종편 이후 ‘비싸게’ 부르는 경향이 심화될 것이라는 게 드라마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류 스타 출연이 해외 수익 창출
일부 배우들의 몸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여전히 최고가 기록은 ‘태왕사신기’ 출연 당시 회당 2억5000만 원을 받았던 배용준. 그 뒤를 이어 이병헌·송승헌·권상우·비(정지훈) 등이 높은 ‘몸값’을 자랑하고 있다.
이병헌은 ‘아이리스’ 출연 당시 회당 1억 원 정도의 출연료를, 송승헌은 ‘에덴의 동쪽’에서 회당 7000만 원+α를, 권상우와 비는 회당 5000만 원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주 제작사 K PD는 “송승헌의 실질적 출연료는 1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안다”며 “출연료 외에 판권과 해외 비즈니스 수익 부분을 공유하는 게 계약 조건이었는데, 특히 요즘에는 배우들이 출연료 외 부가적인 수익도 나누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러한 현상은 한류 배우의 캐스팅이 곧 해외 판매 등의 수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K PD는 “실제로 한류 스타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일본 등 해외에서 먼저 제의가 온다”며 “여성 배우들에 비해 남성 배우들의 몸값이 확연히 높은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또한 “해외 투자 유치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높은’ 몸값을 마냥 문제 삼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이면 계약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라고도 덧붙였다.
여성 배우 중에는 고현정이 단연 퀸이다. ‘대물’에 출연할 당시 회당 55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여성 배우 중 한류의 원조인 최지우의 회당 4800만 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이 밖에 하지원·김태희·한예슬 등 A급 여배우들의 출연료는 회당 1500만~2500만 원 사이에서 결정된다는 게 관계자의 얘기다.
이처럼 배우들의 몸값이 높아진 데는 외주 제작 시스템의 도입과 방송사로부터 편성권을 따내기 위한 제작사들의 과도한 경쟁도 배경에 깔려 있다.
K PD는 “외주 제작사는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찬이나 해외 판매를 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거액을 주고 톱스타를 캐스팅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그 때문에 최근에는 한류 아이돌을 캐스팅하는 게 최대 관건”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몇 해 전 드라마 제작사들끼리 회당 1500만 원을 상한선으로 한 ‘출연료 가이드라인’을 내놓긴 했지만 협업 대상이 곧 경쟁자이다 보니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K PD는 “막상 캐스팅을 하려고 하면 배우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송승헌과 소지섭 등이 현재 톱인데, 언제 적 톱이 아직도 톱이냐는 얘기다. 그는 “한 작품을 할 때 엄청나게 오디션을 보고 신인을 발굴해 결국 성공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쉬운 작업은 아니더라”며 “지금은 단막극이나 특집극이 거의 없어지는 추세에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A급 배우를 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연기자의 출연료 등급
경력·인지도 등에 따라 6~18등급, 인기 배우는 자유 계약자
예술인 노조에 소속된 개그맨을 포함한 연기자들의 출연료는 기본적으로 방송사가 정한 ‘출연료 등급’에 따른다.
외주 제작 시스템이 정착되며 일부 드라마 제작사는 자체 등급표를 적용하기도 하는데 외주 제작사의 금액이 방송사보다 ‘나은’ 수준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방송사 등급으로 봤을 때 성인 연기자 등급은 현재 6~18등급(아역은 1~5등급)으로 책정돼 있다.
방송사 공채 탤런트는 1년간 전속 기간을 마치고 나면 인지도 등에 따라 7~8등급을 부여받는 식. 경력이 등급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 20년 경력의 연기자가 최고 등급인 18등급 정도에 해당된다. 등급은 방송사가 결정하는데 해마다 참여도·인지도·연기력 등을 기준으로 등급 심사를 거친다.
18등급 이상은 ‘자유 계약’이다. 즉, 18등급까지 오른 연기자는 노조를 통해 방송사에 ‘자유 계약’을 요청할 수 있고 방송사에서 심의를 통해 이를 받아들이면 이후부터는 회당 출연료 계약을 따로 하게 된다. 소위 한 번에 떴거나 중간 등급에서 갑자기 인기가 상승한 경우에도 연기자 본인의 요청에 따라 ‘자유 계약자’로 전환할 수 있다. 배용준·송승헌·고현정 등 대다수의 톱스타들이 거액의 개런티를 받는 것도 그들이 ‘자유 계약자’이기 때문이다.
전체 연기자의 80%에 해당하는 이른바 ‘생활 연기자’들은 철저히 등급별 출연료를 받고 있는데 금액이 적은데다 그나마 기회가 적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일례로 60분 주말 연속극 기준 중간 등급인 13등급 연기자의 출연료는 회당 87만 원 선. 그러나 매주 출연하는 일이 거의 드물어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울 때가 많은 게 현실이다.
지난 3월 ‘예술인 노조’ 위원장에 취임한 탤런트 한용수 씨는 “현재 방송사에 등급 조정 신청을 해둔 상태”라고 말했다. 하위 등급을 없애고 상위 등급을 상향 조정해 중간 등급을 늘리는 게 이상적인 형태라는 것. 그는 “억대의 출연료를 받는 배우들은 해외 자본을 유치해 온 것이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출연료를 나누자는 게 아니라 다 함께 상생하자는 게 우리의 취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사의 사회 환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흥행 등을 통해 방송사가 얻은 광고 및 부가 수익을 일부 나누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경BUSINESS 808호 기사 입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