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캐리비안의 해적-낯선 조류'(사진)가 지난 19일 개봉돼 흥행 질주하고 있다. 앞선 세 작품 '블랙 펄의 저주'(2003)와 '망자의 함'(2005) '세상의 끝에서'(2007) 등은 전 세계에서 26억달러를 벌어들였다. 낡은 이야기였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캐릭터와 대담한 액션 모험담으로 풀어낸 까닭이다.

신작은 영원한 젊음을 선사한다는 '젊음의 샘'을 놓고 벌어지는 모험이다. 선장 잭 스패로(조니 뎁)는 애증 관계였던 안젤리카(페넬로페 크루즈),무시무시한 공포의 대상인 검은 수염 해적(이언 맥셰인)과 함께 항해한다. 잭과 앙숙인 바르보사(제프리 러시) 선장도 영국왕의 명령으로 샘을 찾아오고 스페인 군대도 끼어들면서 등장인물들은 복잡하게 얽힌다.

잭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위기의 순간에 임기응변으로 천연덕스럽게 살아남는다. 그는 인간의 파렴치한 본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안젤리카를 감언이설로 유혹해 섹스관계를 맺고는 달아난다. 그는 다시 만난 그녀의 비밀을 듣고는 그녀 아버지에게 고자질한다. 물론 또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사욕 때문이다. 안젤리카도 잭의 그런 심리를 이용해 그를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이런 배신 행각에 심각한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밀고 당기는 사랑의 과정일 뿐이다. 그들은 서로의 배신을 인정하며 새로운 관계로 나아간다. 관객들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면모도 지녔다. 상대방이 진짜 죽음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외면하지 않는다.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인어도 마찬가지다. 한 생포된 인어는 자신을 돌봐준 목사와 사랑을 꿈꾼다. 영화에는 절대 악이나 절대 선의 화신이 없다.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거나,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들이다.

쉼없는 액션도 마치 게임처럼 전개된다. 수많은 인물들이 죽거나 다치지만 전혀 슬프지 않다. 주인공들이 목표에 도달하는 데 사용되는 소품에 불과하다는 무언의 약속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사실적이면서 판타지적인 요소야말로 흥행에 성공한 이유다. 캐리비안 해적이 본격 액션물로 표현됐다면 외면받았을 것이다. 스피드는 느리고 인물들의 감정은 너무 무거웠을 것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