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선진화재단ㆍ한경 월례토론회] "신속처리 보다 신뢰회복이 우선…저축銀 감독권 예보에 넘겨야"
금융감독원이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최근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에 대해 금감원의 전 · 현직 직원들이 감시 · 감독은커녕 되레 대주주와 유착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은행 보험 증권 신용금고 등 분야별로 흩어져 있던 감독 기능을 모아 민간 통합감독기구로 탄생한 금감원을 다시 분리,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7일 '금융회사 부실과 정책 과제'를 주제로 월례토론회를 열어 해법을 모색했다.

◆정부가 사태 키웠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허찬국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는 저축은행 부실 문제에 대한 당국의 접근 방식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산저축은행은 감사원이 2006년에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었고 금감원 직원의 업무 관련 비리도 꾸준히 적발돼왔다"며 "그럼에도 최근 저축은행 부실 문제에 대한 정부의 해결 방식은 '속전속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또 "지금 와서 감독당국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정부는 신속한 단기 해결책이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천리길의 첫 걸음'을 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종안 성균관대 초빙교수도 "사실 문제를 이렇게까지 키운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며 "이번 사태를 금융 감독 시스템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금융 감독기관이 정부 정책에 예속돼 있는 것이 문제"라며 "경기 활성화를 위해 건전성 관리를 소홀히 하다보니 저축은행 부실이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감독기관 경쟁체제 도입 시급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S&L) 파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S&L은 1980년대 초 규제 완화와 부동산 경기 활황에 따라 고위험 투자가 크게 증가하는 등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 결국 1980년대 중반부터 부실 문제가 터졌고 보험기금(FSLIC)은 고갈됐다. 한 S&L 대표는 감독당국의 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연방 상원의원 5명에게 정치 헌금을 제공했다가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받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미국 정부는 결국 1989년 대대적인 S&L 정리에 나섰고 S&L 감독기구였던 연방주택대출은행이사회를 폐지하고 관련 기능을 재무부 산하 저축은행감독청(OTS)에 넘겼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에서 그랬듯이 저축은행의 감독 기능을 떼내 예금보험공사로 옮기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는 금감원,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곳은 예보가 담당하는 식으로 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허 교수도 "금감원은 시스템 안정이라는 핵심적인 책무에 주력하고 저축은행 감독 기능은 예보로 넘겨주는 게 낫다"며 "대신 예보가 일정 기간 내 계정을 건전화하지 못하는 등 제대로 일을 못하면 다시 기능을 조절하는 방법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감독기관 간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일정 기간 평가를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유 본부장 역시 "금융감독원의 독점 시스템은 해소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범법과 정책실패,준엄한 책임 물어야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은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면 나중에 더 큰 파국을 맞게 돼 있다"며 "정책적 대응이 지연된 부분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훈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전 우리은행장)도 "금융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업종"이라며 "범법 행위를 저지른 금융인에 대해서는 중과세 및 가중처벌 등을 통해 엄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