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어느 새 다문화 사회가 됐다. 한 해 이뤄지는 결혼 100건 가운데 11건이 국제결혼이다(2009년).거주 외국인 수도 1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우리 민족만 사는 것이 아닌 환경으로 바뀌면서 글로벌 개방성,타문화에 대한 수용성 등이 몇 년 사이 중요한 이슈가 됐다.

요즘에는 아파트 수위도 'Recycling is Wednesday(재활용은 수요일이에요).' 정도의 영어는 할 줄 알아야 하고 시골 마을 이장도 5,6개 국어로 인사말을 외우고 있어야 동네 방송을 할 수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올 정도다. 그래도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지속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어 다행이다.

다문화 사회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변화가 수년 사이 일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 컴퓨터 등 디지털문화 속에서 살아온 새로운 세대,바로 '디지털 네이티브(native:원주민)'의 등장이다. 인터넷이 상용화된 것이 1990년이니까 그 10년 전인 1980년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말과 글자,숫자를 디지털 문화 속에서 익힌 집단이다. 21세기 들어 일어나고 있는 거대 변화의 중심에는 '디지털 원주민'들이 자리잡고 있다.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디지털 원주민'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 1984년생인 마크 저커버그다. 그는 만 20세때인 2004년에 페이스북을 창업,수년 만에 7조원이 넘는 자산을 가진 부자가 됐다.

새로운 이 세대가 나타나면서 갑자기 변방으로 밀려난 아날로그 세대를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가 바로 '디지털 이미그런트(immigrant:이주민)'다. 이들은 원래 다른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계속 있었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바뀌면서 갑자기 이주민 신세가 됐다. 스티브 잡스,빌 게이츠도 디지털 세상에서 기회를 잡은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래봐야 성공한 이주민일 뿐이다.

문제는 문화 전반이 '디지털 원주민'들의 세상이 됐지만 사회 주도층은 아날로그들,즉 '디지털 이주민'들이라는 데 있다. 이 묘한 이분법이 21세기 들어 우리 사회 근간을 흔들고 있는 뿌리다.

예전 같으면 보름도 안 갈 것으로 예상됐던 광우병 촛불시위가 수개월을 이어간 것은 디지털로 소통하면서 연대를 다진 '디지털 원주민'들이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나 기성 세대들은 이들과의 소통부재를 탓하는 것외에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건 소통 부재보다 훨씬 심각한 갈등으로 봐야 한다. 원주민과 이주민의 갈등은 거의 모든 경우에 생존 갈등인 것이다. 디지털 세계의 주도권 쟁탈전이었고 그 결과는 원주민들의 승리였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선봉인 1980년대생이 서른을 막 넘겼으니 이제 회사 사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디지털 원주민'들이다. 오히려 5년차 이상쯤 되는 고참들부터는 이주민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간부들은 직원들이나 젊은 고객들을 '이상하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디지털 세계에 이민 온 자신이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경영자라면 더욱 처절해야 한다. 고향에서 받던 '대접'은 잊어라.세상은 디지털로 바뀌었고 경영자인 당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주민에 불과하다. 먹을 것 없어 외국으로 떠났던 이민1세들의 설움을 느껴야 옳다. 그래야 2세를 잘 키우려고 노력할 것이고 미래도 더 밝아진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