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스팩(SPAC · 기업인수목적회사)의 활성화를 위해 합병 대상인 비상장사의 가치평가(밸류에이션) 기준을 우회상장 때보다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학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17일 자본시장연구원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개최한 '스팩 성공사례 분석과 미래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패널로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스팩의 비상장기업 평가는 기업 인수 · 합병(M&A)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비상장사가 주도해 상장사를 합병하는 우회상장과 다르다"며 "법적으로는 스팩도 우회상장에 해당되지만 달리 취급할 여지가 있으며 관련 논의를 추가로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의 이 같은 발언은 스팩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돼 온 비상장사의 가치평가기준을 완화하겠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이날 세미나는 한국경제신문과 금융위원회 후원으로 열렸다.

◆업계 "스팩 관련 규제 완화해야"

세미나에서는 캐나다 법무법인 오글비르노의 피에르 술라드 변호사와 김갑래 세종대 교수가 스팩 활성화 방안과 관련된 주제발표를 했다. 이어 김 과장과 남기천 대우증권 고유자산운용본부장,박성래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서향희 법무법인 새빛 대표변호사,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패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스팩의 성공을 위해서는 관련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 본부장은 "스팩과 합병하는 것이 기업공개(IPO)와 비교해 나은 점이 뭐냐고 비상장사들이 물으면 대답이 궁색하다"며 "합병이 늦어지면서 지난해 22개 스팩을 상장하며 모집한 6000여억원의 자금이 우량 비상장사로 가지 못하고 그대로 잠겨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준 동부자산운용 법인영업상무는 "당국이 스팩제도를 죽이려는 건지,살리려는 건지만 물어보고 싶다"며 "정부의 시각은 현실과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 과장은 이에 대해 "도입한 지 1년 남짓 됐는데 3개의 스팩이 합병한 것은 성공적"이라며 "스팩은 분명히 우회상장에 해당하는 만큼 우회상장에 준하는 법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논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HTS에 스팩 공모가 표시해야"

김갑래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스팩을 거래할 때 공모가도 같이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호가 창에 공모가가 표시되는 것은 물론 전화 매매를 하더라도 중개인이 "공모가가 얼마인 A스팩의 현재 매매가가 얼마"라고 알려주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스팩은 해산할 때 공모가를 보전해주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관련 정보를 투자자에게 수시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야만 스팩에 대한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주가를 안정시킬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술라드 변호사는 2002년 이후 2140개가 만들어져 1700개가 비상장사와 합병한 캐나다 스팩에 대해 "성공요인은 벤처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위해 만들어진 장외시장"이라고 분석했다. 캐나다 스팩은 토론토거래소(TSX) 산하 장외시장인 TSX벤처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므로 비상장사 가치 평가와 합병 과정에서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노경목/임근호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