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값을 나타내는 금리는 시간선호의 결과다. 화폐의 시간가치가 금리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가치에서 역마진이 나는 것이다. 이런 역마진 상태가 5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2%였는데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평균 연 3.7%에 그쳤다. 실질금리가 -0.5%다. 3월엔 실질금리가 -1.0%까지 내려가 7년 만에 최저였다. 이자에서 떼가는 이자소득세를 감안하면 작년 9월 이후 8개월째 마이너스 상태다.

마이너스 실질금리는 시간가치에 의한 자원배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돈을 맡긴 예금자들은 앉아서 손해를 보게 만든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작년 7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연 2.0%에서 연 3.0%로 올린 데는 이런 문제의식도 한몫했을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가 버블을 낳고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예상이었다.

금리가 제 기능을 못하면서 사상 최장기간 시간가치가 역전된 결과가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금리를 인상해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실질금리의 덫에 빠졌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당연히 그 결과는 저축 유인의 상실과 가계부채의 폭증이다. 한국의 가계저축률(2.8%)은 제로금리인 일본(2.7%)과 엇비슷하고 소비대국인 미국(5.7%)의 절반에 불과하다. 가계부채는 1000조원에 육박해 있다. 은퇴 후 금리생활자들은 월 이자 수입이 10년 만에 반토막났다. 급속한 노령화와 함께 부동산 불패신화가 흔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가계가 부동산 외엔 달리 대안을 찾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의 전세대란도 전세금의 실질가치를 하락시킨 저금리정책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마이너스 실질금리는 현재(소비지출)가 미래(저축)를 압도하고,대출자가 예금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체제다. 은퇴세대를 빈곤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정부가 경제위기를 빌미로 전가의 보도처럼 내밀었던 '무조건 낮은 금리'는 이제 폐기돼야 한다. 마이너스 실질금리는 저축을 파괴하고 미래 아닌 현재 소비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부도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