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삼성에 갈 길을 묻는다
클레이튼 M.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노베이터의 딜레마'에서 과거의 성공에 자만하면 후발주자가 앞서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기업이 현재의 관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했더라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시장이 떠올라 주도적 지위를 상실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금 사방에서 공격받고 있는 삼성전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이노베이터의 딜레마일지 모른다.

휴대폰부터 그렇다. 삼성이 휴대폰시장 1위 노키아를 잡겠다고 내달릴 때인 2007년 6월 애플은 아이폰을 들고 나와 경쟁판도를 일거에 엎어 버렸다. 애플은 지난 1분기 매출액 기준으로 휴대폰 시장 1위로 올라섰다. 경쟁자들에 앞서 스마트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게 주효했다. 애플은 선발자만이 기대할 수 있는 브랜드 로열티와 기술 리더십,희소자산의 선점,구매자 전환비용의 활용,그리고 학습효과,네트워크 외부성 효과 등 수확체증의 이점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 여세는 태블릿 PC시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삼성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재빨리 애플 추격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애플이 삼성을 특허침해로 제소한 것도 삼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이 '시장진입의 타이밍'을 놓친 기회비용은 너무나 크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로드맵에서 더 이상 변수가 아니라고 봤던 엘피다도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엘피다의 20나노급 D램 양산 계획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라고 해도 삼성은 미세화 경쟁의 고삐를 다시 당기지 않으면 안 될 처지다. '연속적 혁신(continuous innovation)'을 이끌고 가는 기업의 숙명이다. "네가 머물기를 원한다면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 앨리스'에 등장하는 레드 퀸(red queen)이 말하는 진화의 경주가 그런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인텔의 경우는 기술적 피곤을 덜어준 측면이 있다. 인텔의 3D(3차원) 반도체 개발은 미세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으로 여겨졌던 트랜지스터 구조혁신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기술적 불확실성을 해소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인텔이 모바일 시장진입에 절치부심한다는 것이 다시 확인된 이상 애플과 인텔의 동맹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한편으로는 실리콘 축소의 한계점이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기술적 한계가 극복된다 해도 경제적 측면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실리콘 외 대체재료 가능성도 변수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이 다품종 · 소량 공급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래저래 삼성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 말고도 삼성은 TV산업에서 표준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3D TV를 놓고 삼성과 LG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거친 말을 주고 받았다. 이것 자체가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상황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액정표시장치(LCD)는 중국과 대만,이른바 양안동맹의 강화 등으로 새로운 경쟁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이들 역시 삼성의 주력분야들이다.

어느새 경쟁의 중심에 서 버린 삼성이 이제는 스스로 갈 길을 정해야 하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섰다. 단순히 위기감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통하기 어려워보인다. 삼성은 시장이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내놔야 할 때가 왔다. '발빠른 추격자', 그래서 모방자라는 악평도 듣는 삼성이 과연 '발빠른 선발자'로 바뀔 수 있을 것인가. 연속적 혁신의 틀을 깨고 '불연속적 혁신(discontinuous innovation)'에 과감히 도전할 수 있을 것인가.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