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 주민 또 한번 울린 인도주의
또다시 한반도의 평화적 관리라는 미명하에 교류요,협력이요,지원이라는 귀에 익은 단어들이 우리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특히 북한 주민의 어려움을 빙자한 인도주의 지원이란 주제의 칼날이 그 원인을 제공한 북한 당국에 향하기보다 오히려 과거에 북한 주민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국제사회와 한국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느낌이다.

한번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을 가다듬어 보자.우리의 대북정책은 제재는 물론 교류,협력과 지원 자체를 결코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북한의 변화와 그를 통한 남북의 통합과 통일,더 나아가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에 한번 서보기 위한 우리의 희망을 실현해 나가는 과도적 과정에서 사용하게 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대전제는 바로 북한의 변화이다. 북한의 변화야말로 우리,아니 국제사회가 바라고 있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하는 대전제이다. 필자는 북한에서 나서 자라 배고픔이 얼마나 서러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배고픔보다 더 큰 서러움과 분노는 식량을 배급받지 못하는 게 아니라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보자고 하는 국민의 노력이 짓밟히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문제는 사유화만을 실현해도 얼마든지 해결될 문제다. 중국이 1979년 개혁 개방 이후 식량생산이 3년 사이에 40% 이상 증산된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아직도 60여년 전에 있었던 김일성의 주체농법의 가르침이 현대 농사의 근본적 지침이 되는 이 현실에서 북한 농업생산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반정부, 반혁명의 정치적 술어로 취급되고 있다.

사유화가 싫다면 개인 도급제를 하자고 제안한 적도 있다. 그러나 김일성의 교시가 있는 이상 그 모든 논의는 적대적 행위로 몰린다. 필자도 북한 출신으로 그곳에 수많은 친척과 친구,스승과 제자,고향사람들을 비롯한 지인들이 있다. 어찌 그들의 배고픔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당장 살리고 보자는 말을 어찌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의 생명보전이 없는 내일의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의 문제를 잘못 해결하면 내일도 모레도 그 이후에도 오늘 하는 말을 영원히 되풀이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도적 문제를 근본적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집단 병영국가에 대한 인도적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주장하는 북한주민의 식량문제는 오늘의 해결만이 아니라 근본적 해결을 말한다.

인도주의를 하나의 생업으로 맡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원이 곧 인도주의일지 몰라도 북한에 사는 주민이나 북한체제의 문제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체제변화 지원이야말로 진정한 인도주의라고 믿고 있다. 즉 북한에 적용되는 수많은 대화와 협력과 교류와 지원들이 북한 주민이 장기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는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20여년간 한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에 수십억달러의 인도적 식량지원을 해 왔다. 만일 그 사이 북한당국이 식량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농업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해왔다면 지금쯤 그들은 더 이상 지원 대상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았을 것이다. 더는 인도주의 혜택을 받지 않아도 풍요롭고 행복하고 활기찬 사회에서 살도록 하는데 인도주의적 지원의 목표를 두어야 그 사명이 빛날 것이다.

인도주의 담당자들이 초심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배고픔보다 더한 정치적 학대속에 있는 북한 국민의 인권을 해결하는 것이 최고의 인도주의요,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식량난을 해결하는 과정임을 살아본 사람들은 누구나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식량지원보다 체제변화지원을 하는 것이 최고의 인도주의이고 그것을 가로막는 세력에 대한 비판이 북한주민에 대한 최고의 인도주의임을 명심해야 한다.

조명철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