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4일 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둘러싸고 둘로 쪼개졌다. 박지원 원내대표를 제외한 최고위원 전원이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비준안에 반대의견을 던졌다. 이어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서도 상당수 의원들이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반대의사를 밝히자 손학규 대표는 "이 상태로는 본회의 처리가 어려우니 한나라당과 협의해 차기 원내 집행부로 넘기자"고 정리했다. 여 · 야 · 정의 합의문을 단 이틀 만에 백지화시킨 것이다.

민주당은 한 · EU FTA비준을 놓고 비공개 난상토론을 벌였다. 이 와중에 박 원내대표가 최고위원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합의한 데 대한 성토가 쏟아졌고 비공개 석상에서 양측 간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까지 나왔다. 정동영 최고위원을 비롯 천정배 박주선 최고위원은 강한 반대의견을 피력했고 정장선 홍영표 송민순 의원은 비준안 처리로 맞섰다. 정 최고위원은 "당내 의결기구인 최고위원들 7인의 반대로 합의안은 사실상 파기됐다"며 "FTA체결 시 사실상 무력화되는 기업형슈퍼마켓(SSM)법안 대책을 위한 유럽 측과의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장선 의원은 "협상과정에서 통상교섭본부가 보여준 행태에 분노하지만 여야 원내대표가 협상을 통해 차선이나마 SSM 규제강화 법안을 마련한 것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를 보여준 사례"라며 처리를 촉구했다.

평소 한 · EU FTA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던 상당수 의원들은 박 원내대표가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지나치게 서두른 절차상의 이유를 들어 6월 처리입장을 보였다. 여기에 야권연대의 틀을 유지하려는 민주당 입장도 강경론을 부추겼다. 우제창 의원은 "합의문에 상당한 성과가 있어 원론적 반대보다는 비준 시점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용섭 의원은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은 왜 협상 전에 막지 않았고 원내대표는 이런 최고위원들의 입장을 알면서 그리 서둘렀는지 의문"이라며 의사결정과 리더십 부재를 지적했다.

원내대표 선거경쟁에 나선 강봉균 의원은 "최고위원과 원내대표 간 감정싸움 양상을 보이면서 내용 자체보다는 절차 문제로 변질되는 모양새가 됐다"며 "이렇다면 여야 차기 원내대표들이 들어서는 6월에 처리하는 쪽이 순리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