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RS(국제회계기준)이 올해 본격 도입되면서 상장사의 주가 수준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주가가 '싸다' 혹은 '비싸다'를 논할때 흔히 쓰는 척도인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ROE(자기자본이익률) 등이 기존 K-GAAP(한국회계기준) 때와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변화가 없는데 회계기준 변경으로 이런 지표들이 달라지면 주가가 싸 보이거나 비싸 보이는 '착시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시장이 데이터를 축적하고 적정 주가수준을 다시 평가하기 전까지 다소간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배주주ㆍ비지배주주 순익 별도 제시한 증권사 많지 않아

PER은 주가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유용한 지표다. PER은 쉽게 말해 몇 년치 이익이면 회사를 통째로 살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한 해 동안 100억원의 순이익을 창출하는 기업 시가총액이 1000억원이면, PER은 10배가 된다. 분모에는 EPS(주당순이익), 분자에는 주가를 넣어 계산하면 된다.

IFRS가 도입되면 분자인 주가는 변함이 없는데 분모인 EPS가 변한다. 회사 전체의 순이익에 바뀐 회계기준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IFRS에서는 자회사 지분이 50%를 초과하면 지분율에 관계 없이 순이익을 포함한 모든 항목을 모회사 재무제표에 잡는다. 예전에는 지분율 60%인 자회사 순이익이 100억원이면 모회사가 60억원만 순이익에 반영했으나, 앞으로는 100억원 모두를 더한다. 모회사 입장에서는 회계기준 변경으로 40억원의 순이익이 더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바뀐 회계기준에서는 '지배주주 지분'과 '비지배 지분'을 나눠 표기하게 했다. 자회사 지분이 60%라면, 40%에 해당하는 이익은 '비지배 지분'으로 분류된다. 연결 순이익에서 비지배 지분을 빼면 예전과 비슷한 규모의 순이익이 나온다는 얘기다.

문제는 지배주주 지분과 비지배주주 지분을 나눠 실적을 예측하는 작업이 아직 미진하다는데 있다. 우리투자증권이 지난 3월말 삼성전자의 증권사 실적 예측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IFRS로 실적 추정치를 내놓은 21개 증권사 중 단 6개 증권사만 지배주주와 비지배주주 지분을 분류했다.

PER을 구할 때 향후 실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실적 예측치에 오류가 있다면 PER 자체가 잘못 계산될 수 있다. 비지배주주 지분 만큼 순이익을 빼지 않고 더하면 PER이 낮아져 주가가 싸 보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투자증권은 이런 점을 감안, 연결 순이익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여지는' 종목을 미리 사서 시장 혼란기에 대응하라고 투자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착시효과로 주가가 휘둘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시장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아직까지 컨센서스(증권사 예상치 평균) 항목에 지배주주와 비지배주주 순이익을 나누지 않고 있어 종목 PER은 물론, 업종이나 시장 PER 기준이 없는 상태다.

또 지분이 30~50%인 다소 '애매한' 자회사 실적을 기업들이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아 당분간 혼란은 가중될 전망이다. IFRS에서는 지분이 50% 미만인 기업을 연결로 묶으려면 실질지배력을 입증해야 한다.

◆업종별 순이익 증감 감안해야…

지배주주와 비지배주주 분을 나누더라도 순이익은 예전과 같지 않다. 업종 별로 순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많이 바뀌어서다. 예컨대 올 1분기 은행, 혹은 은행계 지주사들이 줄줄이 '깜짝 실적'을 기록한 것도 바뀐 회계기준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중순 실적을 발표한 하나금융지주를 필두로 KB금융, 우리금융 등은 모두 큰 폭으로 개선된 실적을 내놨다. 하나금융지주는 1분기 순이익이 3895억원에 이르렀고 우리금융 5407억원, KB금융 7575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IFRS에서는 대손충당금을 쌓는 기준이 이전과는 상이하다. 과거엔 대출채권의 등급을 나눠 금융감독원이 정한 일정 비율을 곱했는데, 올 1분기부터는 각 은행별로 과거의 경험치를 적용한 '경험손실률'로 계산한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대형 은행은 낮은 손실률을 적용, 충당금을 적게 쌓게 된다. 순이익 규모가 커질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은행들의 이번 '어닝 서프라이즈'를 다소 평가 절하하며 적극적은 투자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은행업종 담당 애널리스트는 "은행의 1분기 호실적은 단순한 회계기준 변경 때문이 아니지만 기관 투자자들이 '어쨌든 과거 실적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한 것 아니냐'며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의견을 내긴 어렵다"고 털어놨다.

투자비가 많은 통신업종은 IFRS 도입으로 감가상각 방식의 변화가 화두다. 증권업계에선 SK텔레콤이 감가상각을 기존에 일정 비율만큼 차감하는 정률법에서 일정 금액만큼 차감하는 정액법으로 바꾸면 영업이익 증가 효과가 연간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지난 22일 보고서에서 기존 K-GAAP 단독 기준 지난해 SK텔레콤의 순이익은 1조4110억원이었으나, IFRS를 적용하면 순이익이 1조9470억원으로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건설ㆍ서비스 업종의 경우 수주를 매출로 인식하는 기준이 변경돼 수익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 삼성증권은 지난달 20일 한전기술의 1분기 실적을 추정하면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실적이 나올 전망이고 이는 IFRS 적용 탓이라고 지적했다.

김승우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한전기술이 1분기에 UAE(아랍에미리트) 사업 매출을 크게 인식하면서 큰 폭으로 개선된 영업이익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IFRS 적용으로 용역 매출의 인식이 기존의 발생주의 원칙에서 진행률에 따른 평균 원가 인식법으로 변경돼 기대에 못미치는 실적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PBRㆍ부채비율 등 변동사항 꼼꼼히 살펴야…

IFRS은 이익 뿐 아니라 자산 가치, 부채비율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산가치의 경우 비상장사나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등이 재평가된다. 자산 가격을 취득 원가나 장부가가 아닌, 공정 가치로 반영한다.

이는 PBR의 변화로 이어진다. PBR은 주가를 BPS(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것인데, 자산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면 BPS 또한 낮아지거나 높아질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량 비상장사를 보유한 지주사, 알짜 부동산을 보유한 자산주 등이 부각될 수 있다. 회사 자체의 경쟁력은 대동소이하나 가치는 상대적으로 두드러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분 50% 초과로 연결대상을 한정한 기업들의 경우 재무제표상 비상장 기업의 중요도가 확산될 것"이라며 "지주사간 동등 비교를 위해 실질 지배력을 인정하는 기업들 분석에도 비상장 자회사에 대한 분석과 재평가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연결로 재무제표를 작성했을 때 부채비율이 급등하는 산업이나 기업은 주의해야 한다. 한국투자증권이 지난달 중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IFRS로 회계기준을 바꾼 뒤 자산규모 2조원 이상 87개사의 부채비율은 기존 99%에서 172%로 크게 높아졌다. 특히 화학, 기계, 자동차 등의 업종 부채비율 상승세가 높았다.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일 뿐 아니라 신용등급 등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