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명당에 대한 열망이 강한 민족도 없다. 땅의 기운이라도 빌려 부족한 복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한때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도 이장을 했다하여 세간에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자손이 잘되기를, 아니면 지금 누리고 있는 부와 명예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풍수를 따지며 양지바른 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 국토의 2%가 묘지화 되어 있어 더 이상 묘를 쓰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명당에 대한 욕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저 누가 명당이라고 하면 일단 ‘사놓고 보자’ 식이니 아직도 이 땅에 명당이 남아있기나 한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몇 년 전 일이다. 한 사업가가 필자를 찾아 와 구들장이 내려앉도록 한숨을 쉬어대며 말했다. “아버님의 산소가 홍수로 봉분이 유실되어 좋은 명당 터로 이장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근방의 명당 터들은 다 사놓았지만 정작 어느 곳이 진짜 명당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진짜 명당 터를 골라 주십시오!”

나는 되물었다. “유명하다는 지관(地官)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라고. 그러자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한국에 내로라는 7명의 지관들에게 이미 찍어놓은 명당 터들을 선 보여주었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분들 하시는 말씀이 하나같이 다 다른 게 아닙니까? 어떤 지관은 자손이 절손될 터라고 하지 않나, 또 어떤 지관은 죽을병에 걸려 조만간 사람이 죽어나가는 터라고 하지 않나, 이거 걱정이 돼서 잠도 못자고….”

결국 나는 그러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찍어 놓았다는 명당 터로 가는 날, 그해 최대의 폭설이 내렸다. 전문 베테랑들까지도 산에 오르길 거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막무가내로 올라가야한다고 우겼다.

하는 수 없이 찾아간 그가 잡아놓은 명당 터. 그런데 막 눈이 그쳐 온 설원이 햇빛으로 가득한 그 땅에 그가 잡아놓았다는 명당 터에서만 눈이 녹아 있는 것이 아닌가. 말 그대로 눈까지 지기(地氣)를 받아 녹는 천하의 명당 터였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서슴없이 말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이곳으로 이장하십시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님도 이 자리를 좋아할 것이라며 만족해했다.

풍수지리에 따라 묘만 잘 쓰면 자신이나 후손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명당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이 복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복이 후손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다. 즉 자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먼저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잘 이어가면 대대손손 복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복 지을 생각은 아니하고 땅만 열심히 찾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완용은 매국의 대가로 권력과 부를 마음껏 누렸고, 그가 죽기 전 익산군 낭산면에 자신의 신후지지를 잡아 놓았다. 하지만 명당이라고 잡은 그의 무덤은 그 후 후손에 의해 파묘가 되고 화장되어 장암천에 뿌려졌다. 업을 지은 사람은 아무리 명당자리라 하더라도 편안하게 누울 수가 없다. 천하의 명당,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긴다는 천장지비(天藏地秘)라도 사람이 부덕하면 그렇게 채석장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이완용의 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백제 계백장군의 묘가 있다. 신라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전사한 장군의 시신을 백제 유민들이 은밀히 매장했는데, 급하다보니 대충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매장을 하였다. 그리고 장군에게는 돌볼 후손도 없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계백장군의 묘는 온전한 모습을 잘 보존되고 있고, 매년 참배객이 늘고 있다. 아무리 묘가 명당과는 거리가 먼 흉지(凶地)였다 하더라도 찾는 사람이 많으면 길지(吉地)로 바뀌는 것이다.

‘땅은 살아있다’라고 말하는 풍수가의 말이 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복까지 주지는 않는다. 명당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정성이 모이고, 마음이 모이는 곳, 그곳이 진정한 명당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명당 찾기를 하고 있을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멀리서 찾지 말라고. 사람의 한 생각, 한 마음이 천하의 명당을 만드는 비결이라고 말이다.(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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