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심리학자인 지상현 한성대 교수는 우리 옛 민예품에서 현대적 미술 양식을 본다. 18세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그림 '기방무사'에서 피에트 몬드리안의 면분할 특징을 확인한다. 도쿄 민예관에 소장된 17세기 '철사염부자기'에서는 피카소의 '윤곽의 해방' 기법을 발견한다. 각기 다른 역사 철학적 배경과 반복 실험을 통해 탄생한 서양의 현대적 미술 양식이 어떻게 옛날 조선의 민예품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 현대성은 과거 모든 나라와 민족의 민예품에서 발견되는 경향이 아닐까. 인류 공통의 경험이 쌓여 대뇌에 각인된 '문화적 원형'처럼 말이다.

《한국인의 마음-오래된 미술에서 찾는 우리의 심리적 기질》은 이런 의문에 대한 지 교수 자신의 관찰과 사유를 함축하고 있는 책이다. 지 교수는 우리 고미술품에서 발견되는 현대성은 한민족 고유 특성이라고 단정한다. 한국인의 심리적 기질 특성이 예술적으로 자연스레 발현된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한국인의 심리적 기질을 '매닉(manic) 친화형 성격'으로 규정한다. 정신의학의 병리학적 분류를 빌려 구분한 것으로,일본의 '멜랑콜리(melancholy) 친화형 성격'과 대비된다.

매닉 친화형 성격은 조울증(躁鬱症)의 병전(病前) 특성과 맞아떨어진다. 흥이 많고 행동력이 강해 한번 불이 붙으면 못 할 일이 없다. 조급하고 사고의 비약이 잦으며 논리적 사고에는 약점을 드러낸다. '빨리빨리 문화''냄비 문화' 특성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냥 급한 것만은 아니다. 착 가라앉는 울의 상태도 교차한다. '붉은 악마'의 열정과 '모닝 캄(morning calm)' 이미지가 섞여 있는 까닭이다.

반대로 일본은 차분하고 강박적이다. 이상이 높고 규칙에 집착하며 감정표현이 적다. 헌신적이지만 남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전체 분위기에 자신을 맞추는 편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우울증으로 진행되기 쉬운 기질이란 것이다.

그는 매닉 친화형 기질이 우리 옛 미술품에 그대로 녹아있다고 말한다. 사찰의 사천왕상,목어,귀면와 등은 신명이 넘치고 해학이 살아있는 조의 상태를 대변한다. 신윤복의 풍속화,윤두서 초상화,삼단합 등은 강박적일 정도의 울증 상태를 보여준다.

이 조울증적 심리기질이 고미술품의 현대성과 곧장 연결된다는 게 지 교수의 지론이다. 사진술의 발달과 함께 개발된 현대미술 양식은 반전,대비,불안,우연성,그리고 단순성,기능주의 등의 특징을 보인다. 우리 고미술품에 드러나 있는 양식적 특징들이다.

지 교수는 도쿄 민예관이 소장하고 있는 19세기 '석제약탕관'에서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의 본산인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주전자를 연상한다. 백자에 회회청을 칠한 '삼단합'에서는 정돈된 직선과 흐트러진 붓자국의 대비,즉 작위와 비작위의 대비를 읽는다. 조선 초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릇 '삼도수내화문외각선문심발'의 백토 자국과 날카로운 파형문양에서는 굵은 매화가지를 훑고 지나가는 봄바람의 대비가 뚜렷하다고 한다.

또 17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철사염부포국에 다람쥐가 있는 항아리'에서는 현대 거장들의 전유물로 여기던 윤곽의 해방 기법을 찾아낸다. 피카소가 1967년 극장공연용으로 그린 '더글러스 쿠퍼' 팸플릿 표지처럼 말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분청사기조화문편병'(보물 1069호)의 음각 선문양이 모더니즘 화가 파울 클레의 스케치 같은 점도 신기하다.

지 교수는 "TV 아나운서의 목소리 톤만 해도 우리나라는 '솔'에 맞춰져 높은 데 반해 일본은 '미'에 맞춰져 있어 낮고 차분하다"며 "일본은 물론 중국의 옛 미술품에 현대적이라고 할 만한 사례가 없는 것을 보면 현대성은 우리만의 특징일 수 있다"고 말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