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인천 청천동에 있는 문서세단기 전문업체 대진코스탈.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우리의 목표는 세계 제1의 문서세단기 창조'라는 큼직한 글씨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태욱 회장(70)이 창업 당시 내건 슬로건이다. 37년이 지나도록 강 회장은 초심을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이 자체 브랜드로 시장에서 경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품질'만이 유일한 경쟁력이죠."

국내 문서세단기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대진코스탈은 세계 시장 정조준에 들어갔다. 품질의 우수성은 시장 진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신 시장 개척 최전선엔 강 회장의 외아들 강성공 사장(43)이 있다. 지난해 68명의 종업원이 1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쓰라린 실패,성공의 밑거름 되다

대학을 중퇴하고 동두천 미8군 군무원으로 지내던 강 회장은 '이런 편한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던 어느 날 미련 없이 사직서를 냈다. 2년가량 복사기회사 임원을 지내면서 사무기기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강 회장은 코리아전자복사기를 세워 L사의 전자복사기 총판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L사가 국산화한 복사기는 품질이 떨어져 일본 제품에 밀려났다. 결국 강 회장은 3년 만에 회사를 접었다.

반지까지 팔아야 했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1년여를 절치부심한 끝에 자동윤전등사기 사업에 손을 댔다. 대진코스탈의 전신인 대진기계공업을 세운 지 1년 만에 국내 최초로 자동윤전등사기를 개발했다. 당시 전자복사기는 1분에 넉 장을 복사했지만 그가 개발한 자동윤전등사기는 분당 50~100장을 등사할 수 있었다. 강 회장은 "공장을 24시간 가동해도 모자랐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고 회고했다.

◆10년 뒤 성공할 아이템에 승부수

자동윤전등사기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도 수출됐다. 하지만 강 회장은 1982년부터 문서세단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왜 팔리지도 않을 제품을 만들려고 하느냐"는 직원들의 반대를 뿌리쳤다.

당시 관공서 학교 등에는 소각장이 있어 중요 문서는 불태워 없애던 시절이었다. 강 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복사기 성능이 개선되는 것을 보면서 등사기가 곧 사양길에 접어들겠구나 싶더군요. 당장 시장은 없었지만 지식정보화시대에는 문서보안의 중요성이 커져 문서세단기가 각광받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죠."

문제는 기술이었다. 일본 업체에 기술전수를 요청했지만 당시로서는 거액인 3억원을 요구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쉽게 무뎌지지 않고 종이를 잘게 자르는 칼날 개발을 위해 전국의 기계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3년을 연구개발에 매달린 끝에 순수 국산기술로 문서세단기를 만들어 냈다. 강 회장은 이 덕분에 두 차례나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세 경영승계…해외로 눈을 돌리다

고군분투하던 강 회장에게 아들 강 사장이 합류한 것은 외환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매출이 60% 급감하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내몰려 있던 시기였다.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강 사장은 "회사가 어려우니 돌아오라"는 부친의 요청에 두말 않고 귀국했다.

당시 대진코스탈의 주요 고객은 관공서였다. 그렇다 보니 매출액은 70억원 안팎에 그쳤다. 영업조직도 변변치 않았다. 강 사장은 해외로 눈을 돌리자고 설득했다.

3년간 문을 두드린 끝에 2005년 일본에 문서세단기 800대를 첫 수출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일본 수입업체로부터 "불량품을 회수해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국내 베어링 업체가 중고품을 납품한 것이 화근이었다. 곧장 일본으로 달려간 강 회장은 불량 베어링을 전량 교체해 줬다. 강 회장은 "손해를 봤지만 신속한 대응 덕분에 일본 협력사의 신뢰를 얻었고 지금까지 1만대가량을 수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계 1위 기업을 향한 도전

대진코스탈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 국가보안국(NSA)의 엄격한 품질심사를 아시아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통과했다. 이 인증을 받은 곳은 대진코스탈과 독일 HSM 등 5곳에 불과하다. 대진코스탈은 올해 미국 조달시장에 300만달러를 수출할 예정이다.

강 사장은 "기술력에서는 독일 HSM과 에바(EBA),이탈리아의 코브라(COBRA) 등 메이저기업과 대등한 수준에 올랐다"며 "세계 시장 점유율을 30%로 끌어올려 세계 1위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13년째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강 사장은 경영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보존 연한이 지난 다량의 서류를 한꺼번에 파쇄해 주는 이동파쇄서비스,파지를 담는 비닐과 비닐 걸이 등의 소모품 렌털사업 등은 그의 아이디어다.

강 회장의 아들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권위의식 없이 직원들을 대하는 아들이 경영자로서의 덕목을 갖춘 것 같아 든든하다"고 했다.

그는 품질로 승부하는 중소기업의 전형(典型)을 만드는 게 꿈이다. 그래야 100년,200년 가는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들 강 사장도 같은 생각이다. 강 사장은 "시장의 변화에 앞서가도록 제품과 서비스를 혁신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천=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