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확대'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27일 "사전에 논의한 적이 없다. 개인적 발언"이라고 여전히 선을 그었다.

김대기 경제수석은 "곽 위원장도 개인 의견이라고 하지 않았나"라며 "사전에 청와대와 논의하거나 교감하지 않았고 현재 청와대와 정부에서 연기금 주주권 확대 방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추경호 경제금융비서관도 "우리와 조율하지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 정책라인의 고위 관계자는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확대,그런 것은 검토하지 않고 있고 학자적 측면에서 곽 위원장의 개인 의견"이라며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보고가 안 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곽 위원장 말대로 하면 관치"라고 규정했다. 곽 위원장 개인 플레이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전후 과정을 살펴보면 의문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6일 정책토론회를 갖기 전날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 보도자료를 뿌렸음에도 정부 차원에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특히 곽 위원장이 오랫동안 정책토론회를 준비해 왔는데도 연기금 주주권 확대 발언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점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곽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이 실렸다고 해석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보도자료만 봐도 곽 위원장의 발언은 시장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아치게 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더욱이 곽 위원장은 지난 23일 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에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연기금 주주권 확대 관련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사전에 움직이지 않았다.

청와대 말대로 사전 조율이 없었다면 컨트롤 타워 부재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사전에 조율했다면 대기업 때리기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청와대가 곽 위원장을 앞세워 연기금 주주권 확대를 관철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종의 무임승차론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청와대가 곽 위원장의 발언으로 시장에 혼선을 줄 것으로 예상했으면 조율을 해야 했고,사후에라도 교통정리를 빨리 해야 하는데 수수방관하는 것을 보니까 사실상 곽 위원장의 발언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사전 조율이 없었다면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곽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점에서 청와대 참모들 중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구조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래기획위 관계자는 "미래기획위 고유 기능은 아젠다를 발굴하고 제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사전 조율 여부에 대해서도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며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