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임시국회에서 졸속으로 통과시킨 개정 상법이 '우물 안 개구리'식 정책 만들기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사의 자기거래 승인 대상에 회사의 이사가 아닌 주요주주와 그 가족을 추가한 조항(상법 제398조),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기업은 '준법지원인'이라는 이름으로 변호사나 법대 교수를 채용해야 한다는 조항(상법 제542조의 13),그리고 회사 기회의 유용금지 신설 조항(상법 제397조의 2)은 세계화 · 개방경제 시대에 맞지 않고,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갈라파고스' 규제일 뿐이다. 이런 규제들 때문에 우리 기업은 다른 나라의 기업이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지불해야 하고,그 결과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개정 상법 3개 조항은 우리 스스로 우리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과도하게 구속한다는 점에서 자승자박의 역차별 규제이다. 이해관계자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규율하는 게 더 효율적인 거래조정 양식에 대해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함으로써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국민경제에도 비효율을 자초하는 개악인 셈이다.

특히 이사 등이 자기거래 승인 규제 대상을 확대한 것은 국제적으로도 입법례를 찾아보기 힘든 과잉규제에 해당한다. 이사는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사의 자기거래를 이사회에서 통제하는 것은 맞다. 미국의 모범회사법도 그렇고 영국의 회사법도 이사회의 사전승인을 받는 자기거래의 범위는 이사 본인과의 거래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개정 상법은 이사 외에 그 배우자와 가족,그리고 주요주주와 그 배우자 및 가족으로 이사회 사전통제 범위를 확대한 것인데,이는 분명히 국제적인 입법례를 벗어난 것이다.

이사 외에 주요주주를 추가한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이 규제에 의하면 10%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회사와의 모든 거래는 사전에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최근의 거래조정 양식은 소재-부품-완제품 조립의 수직계열거래가 대세인데,수시로 발생하는 거래를 매번 이사회에서 사전에 승인 받아야 한다면 경영상의 부담도 문제지만 의사결정의 지연에 따른 비효율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사와 주요주주의 직계존비속까지 규제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모든 국민은 자신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3조의 연좌제 금지 원칙과 달라서 위헌소지마저 있다.

심하게 말하면,국제적인 입법례를 벗어난 자기거래 규제 강화는 우리나라 기업의 장점으로 평가받는 신속 과감한 의사결정과 계열사 간 상호보완을 통한 시너지 창출을 막는 '자해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런 행위가 당연위법이 될 성질이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공정거래법의 대규모 내부거래 규제나 또는 주요주주 등 이해관계자와의 거래를 규제하는 상법의 다른 조항(상법 제542조의 9)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이렇듯 자기거래 승인범위에 주요주주와 그 가족을 포함시킨 것은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며,기업의 거래조정 양식을 왜곡시키고 경영 효율성을 해치는 대단히 위험한 규제이다. 주요주주 문제는 당초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에 없었으나 법사위 심의과정에 들어간 것인데,사안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토론회나 공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입법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조항도 구체적으로 사업기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고,규제의 편익이 클지 부작용이 더 클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미국 영국 일본에서조차 제도 도입을 꺼리는 사안이다.

황인학 < 한국경제硏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