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가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예멘에선 33년간 철권통치를 해왔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30일 안에 조건부 퇴진하기로 했다.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아랍권 세 번째로 최고권력자 사퇴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시리아에선 22~23일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정부가 강경 진압하면서 최소 120명이 사망하는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예멘 대통령 조건부 사임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은 23일 "국민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살레 예멘 대통령이 조기 퇴진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걸프협력협의회(GCC)의 중재안을 수용,30일 안에 권력을 이양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살레 대통령은 이날 지지자들과의 만남에서 "GCC 중재안이 예멘 헌법에 불합치하지 않게 적극적 · 긍정적으로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예멘 집권당인 국민의회당(GPC)의 타리크 알샤미 대변인도 "국민의회당은 GCC의 중재안을 전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장기집권해온 살레 대통령이 결국 국민들의 퇴진 압박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지난 두 달간 예멘 각지에선 살레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예멘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사망자가 13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 사태가 악화되자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아라비아반도 6개국으로 구성된 GCC는 살레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에 대한 사법처벌을 면제하는 대신 30일 안에 살레 대통령이 물러나는 조건부 중재안을 제시했다. 중재안은 일단 살레 정권 부통령에게 권력이 이양되고,60일 내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통합정부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주관하는 것이 핵심이다.

살레 대통령의 조건부 사퇴 입장 발표에 제이 카니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예멘의 평화적 권력 이양을 지지한다"며 "예멘 국민이 안보와 통합 번영을 이른 시일내에 체감할 수 있도록 예멘 정파가 조속히 합의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대화를 통해 권력 이양 시기와 형태가 확인돼야 하며,(권력 이양이) 즉각 시작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예멘 야권연합체인 공동회합당(JMP)의 야신 노만 의장도 "원칙적으로 GCC 중재안을 환영하지만 차기 대선을 주관할 통합정부에 현 집권세력이 계속 참여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온 청년단체들은 "살레 대통령의 처벌 면제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유지했다. 예멘 주요 지역에선 대형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향후 정국 전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리아 유혈사태 악화

시리아에선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폭압 통치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되면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AF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군이 이슬람권 휴일인 22~23일 열린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서 최소 12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리아군은 수도 다마스쿠스 등지에서 연일 시위 강경 진압을 이어가고 있다. 현지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22일 금요기도회를 맞아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에서 112명이 숨지는 등 이틀간 120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지난 5주간 반정부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300명을 넘어섰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유혈 진압을 둘러싼 시리아 정치권 내 대립도 거세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정부의 유혈 진압에 항의해 나세르 알하리리 의원 등 시리아 의원 2명이 의원직을 사퇴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시리아 정부의 강경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은 폭력 진압의 즉각 중단 및 정치개혁 확대를 요구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