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은 지난 3월 21일 노환으로 별세한 이희건 명예회장을 추모하는 행사가 오늘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태평로 소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렸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추모식에는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 서진원 신한은행장을 포함한 역대 은행장들이 함께 했으며, 국내 금융기관장, 정?재계인사, 주주 등 신한금융그룹 임직원들을 비롯해 내외빈 2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약 1시간가량 진행된 추모식은 묵념을 시작으로 약력보고와 신한금융지주 한동우 회장의 추모사, 추모영상 상영, 추모연주, 헌화 등의 순으로 엄숙하게 진행됐습니다. 또, 정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단장과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이 조사를 낭독하여 명예회장님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전했습니다. 이날 신한은행 본점 20층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재일동포의 단합과 민족금융기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이희건 명예회장님을 기리고자 내외빈들의 발길이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신한금융그룹 한동우 회장은 추모사에서 "명예회장님은 신한은행 창립총회 때 신한은행을 국내 최고 은행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씀하셨던 약속을 확실히 지키셨다"며 "이제 신한이 세계적 금융회사로 발전하는 것은 남아있는 저희의 몫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신한은행 서진원 은행장은 "이희건 명예회장님은 그 자체로 신한 이시다"며 "비록 몸은 떠나고 안 계시지만 생전에 늘 강조하셨던 '도전, 개척, 용기'의 정신은 영원히 남아 우리 신한과 함께 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 약력 ◆ 영면(永眠)에 드신 이희건 명예회장님을 추모하며 고인의 인생을 통해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신한의 역사이자, 조국을 사랑한 크나큰 거목(巨木)이셨던 이희건 명예회장님의 약력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이희건 명예회장님은 1917년 경북 경산군 압량면에서 아버님 이은화님, 어머님 안이생님의 4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셨습니다. 1932년 15세에 청운의 뜻을 품고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너신 뒤, 성실과 명민함으로 주경야독 하시며,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1955년에는 재일동포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대판흥은(大阪興銀)을 설립하셨고, 그 뒤 탁월한 리더쉽을 발휘하시어 일본 최대 신용협동조합인관서흥은(關西興銀)으로 키워내셨습니다. 1972년에는 재일한국인 신용조합협회를 세우시고 그 후 20년간 협회 회장을 역임하시며, 문턱 높은 일본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재일교포 상공인들에게 경제적 버팀목을 제공하는 일에 앞장 서셨습니다. 1976년부터 1989년까지 재일 한국인 본국 투자협회 회장으로 재임하시면서 모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투자하겠다는 숭고한 재일 동포들의 뜻을 하나로 모아 조국과 민족의 발전에 힘쓰셨습니다. 1982년에는 모국에 은행다운 은행을 만들자는 재일 동포들의 뜻을 모아 국내 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설립하셨습니다. 당시 영업점 3개로 시작한 신한은행은 명예회장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오늘날 12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금융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에는 국가적 운명이 걸려있는 88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재일한국인 후원회장을 맡아 성금 540여 억원을 모금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뜻 깊은 역할을 하심으로써 몸소 뜨거운 모국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1990년에는 재일동포 2,3세들에게 한민족의 자긍심을 불어 넣어주고, 일본 사회에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일간 고대문화의 전래과정을 재현한 ‘사천왕사 왓소’행사를 창시하셨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창시한 ‘사천왕사 왓소’행사는 오사카 지역 4대 축제 중 하나로 확실히 자리잡아 한일 유소년 축구 교류 등으로 발전되어 한일 양국의 우호증진 및 문화교류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1992년에는 일본 내에 ‘바이 코리아 운동’을 펼쳐 한국제품을 해외에 널리 알리며 구매를 촉진해 대일수출 증대와 국내 경기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렇듯 재일교포 사회를 선도하며 재일동포 상인들의 대부로서 모국의 금융산업과 국위선양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체육훈장 청룡장 등 무수한 훈장과 표장을 수여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크나큰 발자취를 남긴 명예회장님은 2011년 3월 21일 도전과 개척의 삶을 조용히 마감하셨습니다. 이희건 명예회장님은 그 자체로 신한이십니다. 비록 몸은 떠나고 안 계시지만 생전에 늘 강조하셨던 ‘도전, 개척, 용기’의 정신은 영원히 남아 우리 신한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희건 명예회장님,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한창호기자 chhan@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