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쿠바혁명 직후 33세의 피델 카스트로는 독일 여객선 베를린호의 선장 딸 마리타 로렌츠와 사랑에 빠졌다. 카스트로는 첫 아내와 이혼 상태였고 마리타는 19세 처녀였다. 9개월간 함께 지내면서 마리타는 임신까지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낙태를 당한 뒤 두 사람은 헤어졌다. 몇 달 후 마리타는 아바나호텔로 카스트로를 찾아갔다. 이번엔 미국 CIA에 포섭돼 카스트로를 독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호텔 방 변기에 독약을 버렸다.

훗날 다큐멘터리 영화 '사랑하는 피델'에 출연한 마리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죽일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 후에도 카스트로는 끊임없이 암살 기도에 시달렸다. 독 묻은 시가,지독한 병균에 오염된 수영복까지 동원됐다. 2000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쿠바 망명단체와 CIA로부터 600여 차례나 암살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가족과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았다. 사탕수수 농장을 하던 어머니를 찾아가 "인민을 위해 농장을 내놓으라"고 요청했으나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여동생 후아니타는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오빠를 독재자로 부르며 반 쿠바 운동에 참여했다. 딸 알리나 페르난데스도 쿠바를 떠나 아버지를 비판한 책 '카스트로의 딸'을 펴냈다.

카스트로가 늘 카키색 군복 차림으로 대중 앞에 선 까닭은 혁명을 '미완'으로 자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던 탓이다. 혁명 35주년을 맞아 프랑스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옥에 떨어져 마르크스와 엥겔스,레닌과 만나게 될 것이다. 지옥의 뜨거움 같은 것은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을 계속 기다려온 고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미국행 난민에 대해서도 "가난한 인민이 부자 나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발언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직과 군 통수권을 동생 라울에게 물려줬던 카스트로가 19일 열린 쿠바 공산당 6차 대회에서 모든 공직을 공식적으로 버렸다. "혁명가는 은퇴하지 않는다"며 52년간 권좌에 있었으니 최장 국가원수로 기록될 게다. 사회주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300여 경제개혁안으로 실용적 색채를 가미한 '카스트로 이후 쿠바'가 어디로 갈지 주목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