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에게 일자리를 물려주겠다는 것도 황당한 발상이지만 백번 양보해 설사 그럴 것이라면 파업은 왜 또 하려는지 모르겠다. 귀족노조의 전형이다. "

현대자동차 노조의 '세습 채용' 안이 20일 대의원대회에서 전격 통과되면서 안팎에 걸쳐 비판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현장에서조차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자녀들에게까지 넘겨주겠다는 내용을 통과시키자 현장조직 활동가들은 물론 지역 상공계,시민단체까지 비판을 쏟아붓고 있다.

◆"조합원 부끄럽게 하지 말라" 했는데…

노조는 이날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회사는 신규 채용시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해 우선 채용한다'는 단협개정안(제23조)을 놓고 일부 대의원들이 발의한 이 조항의 삭제안에 대한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참석 대의원 355명 가운데 150명만 찬성,과반을 넘지 못하고 부결 처리됐다. 이에 따라 이경훈 노조위원장이 이끄는 노조 집행부가 상정한 세습 채용안은 당초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금속민투위와 민주현장,전현노,평의회 등 현대차 노조 내부 7개 현장조직들이 이날 이례적으로 '이경훈 지부장은 4만5000명 조합원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는 공동 성명서를 내고 세습 채용안 반대 운동에 나섰지만 대의원들의 표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조 대의원들은 겉으로는 세습 채용안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내비치면서도 실제 표결에서는 삭제안에 거부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노조는 이것도 부족해 이날 대의원 결의로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제도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쟁의행위 발생도 결의했다. 노조 설립 후 강성 파업을 통해 20여년간 유지해온 기득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저의를 그대로 드러냈다.

노조는 또 '수혜 대상인 자녀가 법령에 의해 학자금을 면제받거나 무상인 경우 면제된 금액만큼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존 학비 지원 관련 단협안을 삭제하는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KAIST 학생이나 사관학교 생도생,국비유학생,보훈대상자 등이어서 학비를 전액 면제받더라도 회사로부터 면제받은 만큼의 학비를 되돌려받겠다는 의도다. 단협안에는 조합원 정년을 59세에서 61세로 늘리는 안도 포함됐다.

◆"젊은세대 취업 원천 봉쇄"

현대차 노조의 '세습 채용'안에 대해 노조 내부는 물론 지역 상공계,시민단체들까지 일제히 '도를 넘어선 이기주의'라며 비판했다. 현장 조직의 한 활동가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20년 이상 줄파업을 해온 노조가 또 한번 비열한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매도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 노조 측도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규직 직원들의 자녀 취업까지 우대하는 단협안을 마련한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완전히 가로막는 '정규직 세습 조항'이 될 것"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울산시민연대는 "평등과 연대를 중시하는 노동운동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단협 개정안 철회와 노조의 사과를 촉구했다.

울산 상공계 관계자는 "노조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면서 그 기득권을 자녀들에게도 넘겨주겠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며 "젊은 세대의 취업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비민주적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 측은 이날 확정된 노조의 단협 개정안을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극한 노사갈등이 우려된다.

☞ 타임오프 제도

회사 업무가 아닌 노조와 관련된 일만 담당하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회사 측의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제도다. 대신 노사 공통의 이해가 걸린 활동에 종사한 시간을 근무로 인정해 이에 대한 임금을 준다. 2009년 말 노사정 합의로 도입돼 작년 7월1일부터 시행됐다. 근무시간으로 인정되는 노조 활동은 근로자 고충처리,산업안전보건에 관한 활동,단체교섭 준비 및 체결에 관한 활동 등이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