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와 식품업체 간 영역 쟁탈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식음료 사업에 팔을 걷어붙였고,식품회사들은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약과 식품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며 "시장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업체들의 상대방 '텃밭' 공략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뜨거운 영역파괴 경쟁

광동제약이 지난달 말 선보인 식초음료 '광동 맛초'는 출시 1개월 만에 300만병이 팔렸다. 종전 제품들이 식초를 물에 타서 먹는 방식이었다면 '광동 맛초'는 소비자가 바로 마실 수 있도록 식초와 음료수를 혼합한 게 특징이다. 광동제약이 식음료업계의 아이디어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킨 셈이다. 앞서 광동제약은 음료시장에서 식혜 돌풍이 일자 광동식혜로 음료사업에 진출,사업다각화에 나섰다.

현대약품은 피부에 좋은 NAG(N-아세틸글루코사민) 성분이 함유된 기능성 음료 '미에로뷰티엔'을 출시했다. 물파스로 유명한 이 회사는 1989년 식이성 섬유음료 '미에로화이바'를 히트시킨 이후 신사업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번에 신상품을 내놓으면서 다시 건강음료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명문제약은 최근 남미의 인삼으로 불리는 과라나를 활용한 기능성 에너지음료 '파워텐 리뉴얼'을 출시했다. 과라나 추출물과 비타민 B군,로열젤리 등을 함유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유한양행은 식혜와 죽 전문업체인 가평식혜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고,한독약품 등 상당수 제약업체들은 다이어트식품을 비중 있게 취급하는 등 '영역파괴 경쟁'이 뜨겁다.

◆돈 되면 무엇이든 한다

이에 질세라 식품회사들도 제약업에 뛰어들거나 의약품과 비슷한 이른바 기능성 식 · 음료 생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발효유 전문기업인 한국야쿠르트는 지난해 천연원료 비타민 '브이푸드(Vfood)'를 출시한 데 이어 최근 장 건강 전문발효유 'R&B(알엔비) 밸런스'를 선보였다. 기존 발효유가 숙변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R&B 밸런스'는 대장 건강을 위한 예방적 성격의 기능성 제품이다. 한국야쿠르트는 제품 개발비로 50억원을 투자했다. 또 홍삼과 멀티비타민 미네랄을 융합해 만든 어린이 건강기능식품(브이푸드 키즈젤리)도 함께 내놓았다.

유가공업체 남양유업은 이달 말 '산모용 비타민' 제품을 출시한다. 자사 중앙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 · 개발(R&D)을 거쳤으며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이 기존의 분유 영업망과 판매망을 활용해 산부인과 병원 · 조리원 등에서 대대적인 홍보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치로 유명한 동원F&B는 최근 '천지인 알파 홍삼려(麗)'를 출시하면서 홍삼 시장에 뛰어들었다.

전문가들은 "내수시장이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유사업종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기존 유통망과 영업조직을 활용하면 대규모 R&D 투자 없이도 무난히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제약 및 식품회사들이 장기 투자를 외면한 채 틈새 업종 진출에 열을 올리는 건 훗날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