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공자는 인(仁)을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친절 · 인류애 · 존경심을 한데 묶은 개념으로 풀이했다.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선(善)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그 안에 있는 악(惡)은 최저 수준으로 낮출 때 비로소 인이 실현된다"고 했다.

그런 공자가 다윈을 만났다. '나쁜 놈들은 모르는 착한 마음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단 책 《선의 탄생》은 인간의 본성과 진화 과정을 촘촘히 엮어 세상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은 본래 착하다는 성선설에 인류 진화 연구라는 과학의 옷을 입힌 셈이다.

'Born to be good'이라는 원제에서 보듯이 저자는 성선설(性善說)을 대전제로 하고 인간의 다양한 감정이 갖는 함의에 주목한다. 미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웃음은 주변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며,친절한 행동은 보는 이의 가슴에 벅찬 감동을 선물한다. 그런가 하면 당혹감은 부끄러운 행동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 주고,놀려대기는 장난스러운 도발을 통해 어색한 상황이나 관계를 협상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해지는 원리라며 '인의 비율'이란 공식(?)도 제시한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악을 끌어올리는 행동을 분모에 놓고,선을 자극하는 행동을 분자에 놓아 그 비율을 높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론 역시 이 비율의 연장선에 있다고 한다. 초기 인류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공동체를 이뤄 살 수밖에 없었고,상대의 협력을 이끌어 내고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친절본능이 발달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득문득 "이 양반,세상 모르는 소리 하시네"라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공존을 위한 '억지 친절'이라도 필요할 만큼 각박해진 세상에 외치는 저자의 진정 어린 목소리에는 자못 숙연해진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