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의 자살 사태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능 공포가 확산되면서 과학기술계에 대한 안팎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 인재 10만명을 키우자'는 슬로건으로 연중기획 '스트롱코리아 2011'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국경제신문은 최종태 포스코 사장,강태진 서울대 공과대학장,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김차동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을 초청해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사회=이공계 대학의 배출 인력 수준이 낮다는 지적이 있는데 현장에서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최종태 사장=통섭형 인재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합니다. 인문계도 마찬가지지만 이공계도 다른 쪽 지식이 상당히 필요합니다. 포스코는 이공계 대학 2~3학년생을 대상으로 경영학 심리학 철학 등을 이수할 것을 요구하고 요건을 채우면 입사를 시키고 있습니다. 인문계 전공자들에게도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죠.특정 분야에 경도되면 곤란하고 광범위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이죠.입사 후에도 인문학 교육을 하는데 직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정연호 원장=연구기관에도 리더가 있고 팀이 있고 팀워크가 있습니다. 특히 원자력은 시스템 운영이라 팀워크가 필수죠.기술적 능력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젊은 인력들은 관계(human relationship)에서 문제를 보입니다. 조직을 발전시켜야 하는 원장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난감할 때가 많죠.포스코만큼은 아니겠지만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차동 상임위원=업체가 원하는 수준과 미스매치는 있겠지만 계속 좁혀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가진 학생들을 뽑는 방식은 상당히 많은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학들이 나름대로 트랙을 정해 추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경계영역 학문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면 어떤 대학은 고등학교보다도 인프라가 약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불균형이 심하죠.기본적으로 수요 지향적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강태진 학장=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기능인력 양성소가 아닙니다. 해외 교수들이 국내에서 강의하면 상위권 학생들의 성취도는 세계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공대에서 가르치는 건 당장 산업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무가 아니라 깊은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한 융합형 지식입니다. 다만 과학기술이 요구하는 여러 덕목을 우리 교육이 전부 다 채우지 못하는 건 인정합니다. 전공 이상의 소양을 가르치기 위해 교육과정 개편에도 힘쓸 생각입니다.

▼사회=지난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가 방한해 '기초과학은 정부가 책임지고 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상임위원=백번 옳은 말입니다. 그동안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으로 연구 · 개발(R&D) 투자를 늘려왔고 지금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는 세계 3~4위입니다. 성장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높인 셈이죠.다만 그동안 선진 기술을 카피(copy)하는 데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좀 더 창조적인,기초원천 기술에 투자해야만 합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없는 이유가 과학의 기초체력 부실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죠.

▼사회=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국내 원전 관리능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

▼정 원장=1980년대에는 카피 기술 전략을 토대로 기술 자립 플랜을 세워 10년 동안 추진해왔습니다. 1990년대에는 사업 수행 및 R&D와 함께 기술 자립을 이뤄냈습니다. 2000년대에는 중동에 대규모 원전을 수출했습니다. 아주 모범적이고 긍정적인 종합과학 기술개발 사례입니다. 다만 독자적 원천기술에 있어서는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라는 돌발 변수가 생겼는데 사실 스리마일섬이나 체르노빌 사고 이후 원전 개발이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후쿠시마 사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국내 사정으로 볼 때 원전 이외에는 대안이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 안전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쪽으로 R&D 방향이 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회=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강 학장=과학적 시각에서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목적에 충실하게 판단하고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하면 됩니다. 정치적으로 풀려고만 하니 지금과 같은 문제가 나오는 겁니다. 불필요한 논쟁으로 국론을 분열하고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됩니다. 과학과 비즈니스를 묶는 작업뿐 아니라 거주 의료 교육 문화 등 정주 요건이 좋아야 합니다. 주말부부와 이산가족을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세계 과학자들이 와서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명제에 충실하면 됩니다.

▼사회=산 · 학 · 연 협력이 매끄럽지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정 원장=원자력연구원은 기술사업화 과제를 오랫동안 추진해왔습니다. 국가기술의 스핀오프 효과에 따라 만든 연구소 관련 기업은 20여개에 달하고 이들의 연매출은 2000억원이 넘습니다. 다만 보유 기술을 사업화하는 창업은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또 비영리법인이라 제도적으로 주어진 공간이 작습니다.

▼최 사장=엔지니어들이 지방에 너무 안 가려고 합니다. 포스코와 산하 산업과학기술연구소(RIST)에서 나온 아이템으로 창업을 지원하는 것도 있고 창투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별로 없으니 잘 안 하려고 하고 또 금방 포기하고 나갑니다. 포스코는 입사할 때 현장 근무 5년 의무 조건을 내세워 지방 근무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기업 자체의 힘만으로는 여건이 어렵습니다. 지방에 근무하는 과학기술자들에게 정부가 소득세 면제 등 특단의 지원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도 해봤습니다. 기술자들이 '현장에 있고 싶다'는 사명감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사회=죽어버린 창업 열기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 학장=미국은 1990년대 많은 닷컴기업이 나왔고 2011년 현재도 실리콘밸리는 닷컴열풍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벤처 붐이 더 커졌습니다. 우리는 왜 벤처붐이 사라졌을까요. 기술력의 한계도 있었고 일부 사업가의 윤리의식 부족도 있었습니다. 벤처는 기술개발뿐 아니라 고등교육 인력의 실업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건실한 연구 벤처 모델이 정립되도록 정부가 토양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김 상임위원=벤처는 기술력이 핵심인데 기술이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고 상당 기간 준비해야 생깁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기업가정신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미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창업교육을 합니다. 대학과 기업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고, 기업은 그걸로 돈을 벌어 R&D에 다시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보면서 창업정신을 고양하는 방식입니다.

▼사회=우리나라 교육 단계 중에 가장 시급하게 보완해야 할 부분은 어디인가요.

▼정 원장=고등학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과학지력의 베이스(base)가 고교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죠.수월성 있는 인재는 떡잎부터 키워야 합니다. 대학 입시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연구원에 30년 동안 재직하며 후배들을 볼 때면 '저 사람이 어린 시절 물리나 화학을 좀 더 깊이 공부했다면 지금 얼마나 더 발전했을까'란 생각이 들죠.

▼김 상임위원=초등학교 때부터 모두 중요합니다. 어릴 때부터 '딴 거 말고 공부나 해라'라고 강요하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공부 외에도 스포츠 예술 야외활동 등 할 게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이래야 소양도 갖추고 사회에 녹아들어갈 줄 아는 인재가 만들어집니다.

▼최 사장=단기간에 중 · 고교 입시 교과 및 제도,교육방식을 개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변화의 여지가 큰 대학이 교육의 수월성을 책임져야 합니다.

정리=이해성/강현우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