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교원 588명 중 3분의 1가량인 177명이 연구비 횡령 등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과학기술부 감사관실 관계자에 따르면 교과부는 최근 끝난 종합감사에서 교원 177명이 연구비를 횡령하는 등 비리를 저지른 것을 적발해 중징계부터 주의 · 경고 등 조치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KAIST의 행정시스템 전반에 관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학부 전 강의 영어수업,징벌적 등록금제 등 학생들을 압박하는 요인 외에도 경영 전반의 문제가 상존했다는 방증이다. 10일 자살한 P교수도 검찰 고발 대상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KAIST K교수는 "총장이 주도한 개혁에는 성과만큼이나 전제적 인사,닫힌 경영,만연한 상업주의 등 퇴행적 문제점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예산은 많지만…

서남표 총장 부임 이후 활발한 사업 전개로 교내 발전기금과 새 시설 건축이 급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비판도 교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예컨대 복수의 사업 명목으로 관련 예산을 다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리 차입 등을 통해 지출을 강행하고 나머지를 발전기금이나 연구비개발 보전비(Overhead · OH),등록금 등으로 메우는 식으로 예산을 운용해 왔다는 주장이다. 같은 대학의 또 다른 K교수는 "이는 결국 연구 경쟁력 약화와 대학문화 피폐,예산 운용의 모럴해저드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OH 흡수율이 타 국립대나 사립대보다 높은 것도 교수들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OH 흡수율은 교수가 외부 과제를 따왔을 때 건마다 학교에 내는 비율이다. KAIST는 내규에 따라 정부 과제의 경우 25% 이상,민간 수탁과제의 경우 30% 이상의 OH 흡수율을 정하고 있다. 국립대나 일반 사립대의 경우 정부 과제는 15%,민간 과제는 20% 선으로 제한돼 있는 것보다 높다. KAIST B교수는 "OH 흡수율 인상은 직접연구비를 감소시키고 결국 연구에 참여하는 연구원 인건비를 삭감해 착취하는 구조로 정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총학생회가 제기한 KAIST 일부 교수들의 대학원생 인건비 착취 등 문제와 상통하는 대목이다.

◆자율이냐 방임이냐

KAIST의 정부 출연금은 2006~2008년 1100억원 수준이었으나 2009년 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지속적인 사업 확장에 따라 자체 수입(수탁과제+기부금 등)은 계속 늘어 2009년 기준 3719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대체로 인건비나 경상비에 투입하는 정부 출연금과 사안별로 복잡한 내부 사용 규정이 얽혀 있는 자체 수입이 섞여버리면 사실상 추적관리가 불가능하다. 교과부 산하 특수법인(직할 출연연)이라는 성격 때문이다. 교과부 연구개발정책실 관계자는 "자율적 운영의 권한을 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국립대나 사립대에 비해 감독의 정도나 근거가 느슨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최근 감사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예산편성 물품구매 연구비관리 시설공사 교원 임용 절차 등이 내부 규정에 어긋나는지 전반적으로 살폈다"며 "중징계를 포함해 여러 조치를 통보했으나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 섣불리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카리스마 리더십이냐,소통 부재냐

서 총장이 주도한 개혁 중에는 산업체 대상 연구용역 표준양식도 있다. 이는 민간 수탁연구를 통해 발생한 지식재산권을 KAIST가 소유하는 것으로 미국 대학이 대체로 채택하고 있는 선진 양식이다. 학교의 자체 연구 · 개발 역량을 늘리는 인센티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교수들은 "많은 기업들이 자체 표준계약서를 주장해 계약 거부 혹은 지연 사태가 빈번하다"며 "KAIST만의 특수성을 고집하다 자승자박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전기차 등 자체 대형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강행한 것도 찬반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서 총장은 온라인전기차(OLEV),모바일하버(MH) 등 사업에 대해 '차세대 먹을거리'라는 확고한 신념을 내세워 각계의 지적과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해 왔다. 한 교수는 "기초학문에 전력해야 할 학생들이 두 사업과 관련한 강의와 경진대회,프로젝트에 동원당했다"며 "특수사업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창의적 연구와는 다른 얘기"라고 주장했다.

소통 부재가 이미 심각한 KAIST의 병이 됐다는 것은 작년 서 총장 연임 직전 교수협의회보에 실린 의견들에서 잘 나타난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평교수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행정동이 크렘린궁처럼 보인다. 두렵다,두렵다,두렵다" "학교의 위상과 능력이 높아진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무력감에 빠진 소통 부재로는 미래가 없다. "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